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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모델하우스왕' 궁전 또 있다, 과천신도시에 6000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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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에 찍힌 과천시 과천동 육회장과 H건설 소유 땅 일대의 항공사진. 이 때만해도 주택 북쪽에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있다. [국토정보맵]

2015년에 찍힌 과천시 과천동 육회장과 H건설 소유 땅 일대의 항공사진. 이 때만해도 주택 북쪽에 나무가 빽빽하게 심겨있다. [국토정보맵]

 2019년에 찍힌 과천시 과천동 육회장과 H건설 소유 땅 일대의 항공사진. 2015년과 비교해 주택 북쪽 임야의 모습이 달라졌다. 육회장은 2018년 토지를 매입한 뒤 주택 북쪽 임야에 심겨 있는 나무를 불법 벌채하고 보상금이 더 높은 소나무를 배치했다. [국토정보맵]

2019년에 찍힌 과천시 과천동 육회장과 H건설 소유 땅 일대의 항공사진. 2015년과 비교해 주택 북쪽 임야의 모습이 달라졌다. 육회장은 2018년 토지를 매입한 뒤 주택 북쪽 임야에 심겨 있는 나무를 불법 벌채하고 보상금이 더 높은 소나무를 배치했다. [국토정보맵]

'회장님'은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땅을 산 뒤 무단으로 나무를 뽑고 잔디를 깔았다. 고급 소나무도 잔뜩 심었고 석탑 등도 옮겨왔다. 이렇게 만든 회장님의 6000평 궁전은 골프장 카트를 운행할 정도로 넓다. 그린벨트 훼손 행위를 감시하고 시정하는 지자체는 명백한 불법행위를 적발조차 하지 않았다.

그린벨트 내 나무 뽑고 잔디 정원 조성 #골프장 카트로 이동,곳곳에 고급 소나무 #3기 신도시 편입, 다음달 보상가 책정 #불법 단속 안한 과천시…경찰청이 수사중 #

회장님의 땅은 3기 신도시에 편입돼 다음 달 토지보상금이 책정될 예정이다. 토지보상금은 최소 수백억원대일 것으로 추산되고, 소나무 한 그루당 수십~수백만원의 보상금(나무 이전비)이 땅값에 더해진다.

과천시 과천동 그린벨트 6000평에 조성된 육회장의 정원. 잘 가꿔진 소나무가 곳곳에 있다. 함종선 기자

과천시 과천동 그린벨트 6000평에 조성된 육회장의 정원. 잘 가꿔진 소나무가 곳곳에 있다. 함종선 기자

전국에 100여개의 모델하우스 부지 운영권을 갖고 있어 '모델하우스 왕'이라 불리는 H건설 육모(66)회장의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 땅 얘기다. 육회장의 이런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근린공원 부지로 지정된 서울 양재역 인근 대로변의 임야를 사서 무단으로 산을 깎고 나무를 뽑아 개인 정원으로 사용했는데, 보상 당시 이런 불법행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인근 땅의 2배로 보상금을 받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육회장 땅 3600평을 수용하는 대신 육회장에게 지급한 보상금은 600억원으로 평당 보상가가 인근 토지의 2배다. 경사도가 완만하게 잘 가꿔진 개인 정원이기에 거친 임야보다 감정가가 높게 책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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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신도시로 편입된 육회장의 땅 대부분은 답(논)이다. 과천시 관계자는 "토지 소유주가 바뀌면 6개월 동안 영농행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유예기간 제도를 노리고 부인 명의로 매입했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또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육 회장은 지난해 3월 아예 주소를 서울 양재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2018년 5월 당시 거래가액은 H건설 명의 토지 7047㎡, 17개 필지가 51억2300만원이었으며, 육 회장 명의 토지 20개 필지, 1만2340㎡가 91억1300만원으로 도합 142억3600만원(1만9387㎡·37개 필지)으로 나타났다. 도로·대지·전·답·임야 등 약 5874평가량에 부속 건물이 포함돼 있다. 일부 임야를 제외하고 약 4000평의 땅이 신도시 조성을 위한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땅은 서울 지하철 4호선 선바위역에서 500m가량 떨어져 있고,H건설과 육회장 전체 토지의 올해 개별공시지가는 122억3235만원이다. 육회장은 서울 양재동 땅에 대해 공시지가의 10배 수준으로 보상금을 받았다.

육회장이 사들인 땅은 모두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따라 개발제한구역에서는 관할 자치구청장의 허가를 받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건물의 건축 및 용도변경, 토지형질 변경, 죽목벌채(무단 벌목) 등의 행위를 일체 할 수 없다. 그런데 육회장은 논을 잔디정원으로 만들고 곳곳에 소나무를 심었다.

육회장의 과천동 땅 입구.철조망 옆에 정차돼 있는 골프장 카트가 눈에 띈다. 함종선 기자

육회장의 과천동 땅 입구.철조망 옆에 정차돼 있는 골프장 카트가 눈에 띈다. 함종선 기자

항공사진을 보면 육회장의 불법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난다. 육회장은 주택을 중심으로 일대를 무단 벌목해 잔디를 깔아 놓은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지자체인 과천시는 단 한 번도 이를 적발하지 않았다. 과천시 건축과 녹지관리팀 관계자는 "해당 토지의 그린벨트 훼손 행위에 대해 과천시가 시정 명령을 내린 기록은 없다"고 말했다.

과천시 공원농림과농업화훼팀 관계자는 "토지 형질을 무단으로 변경해 일부 논에 해바라기를 심어놨길래 유채꽃을 심으라고 최근 권유했다"며 "논을 잔디정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곧 시정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과천시의 또 다른 관계자는 "경찰청이 육회장 땅과 관련한 투기 혐의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고, 시청에도 여러 차례 찾아와 자료 등을 가져갔다"며 "LH 땅투기 사건이 터진 이후 이쪽 부분도 자세히 조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지자체는 손을 놓고 있는 사이 경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주황색 점선이 3기 신도시 과천지구의 지구경계선. 육회장과 H건설 소유 토지 6000여평 가운데 일부 임야를 제외한 4000여평이 과천지구에 포함돼 있다. [토지이음]

주황색 점선이 3기 신도시 과천지구의 지구경계선. 육회장과 H건설 소유 토지 6000여평 가운데 일부 임야를 제외한 4000여평이 과천지구에 포함돼 있다. [토지이음]

육회장의 땅이 신도시로 편입 된 과정에도 일부 의혹이 일고 있다. 2018년 9월 신창현 전 더불어민주당(과천·의왕) 의원이 신도시급 택지개발 계획을 미리 입수한 뒤 이를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당시 신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는 육회장 토지가 포함된 선바위역 북쪽인 무네미골 일대는 과천지구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해 1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과천지구 신도시 개발 계획에 갑자기 이 지역이 들어갔다. 육회장의 땅과 주택이 지구 경계에 절묘하게 걸쳐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과천지구의 사업부지를 확정하는 지구지정 단계 직전인 '사업인정고시' 때 육회장 토지가 있는 무네미골이 갑자기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김종천 과천시장은 최근 시의회에서 "국토교통부의 제안에 따라 해당 지역을 3기 신도시인 과천지구에 포함했다"며 "(반대급부로) 교통 대책을 세우고 주택수 밀도를 낮춰달라는 우리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국토부 협의에 응했고, 전체 지구 경계가 변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토부 관계자는 "지구 지정 권한은 국토부에 있지만, 지자체와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그런 과정에서 종합적인 판단으로 지구 경계가 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3기 신도시 과천지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주택도시공사(GH), 과천도시공사 등 3개 기관이 공동 참여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육회장 소유 부지 일대 사업은 과천도시공사가 맡고 있다. 현재 토지 보상을 위한 감정 평가 작업이 진행 중이고 다음달 보상가가 책정될 예정이다.

굳게 닫힌 육회장 소유 저택 출입문. H건설측은 이 부지를 복합문화체험단지로 개발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함종선 기자

굳게 닫힌 육회장 소유 저택 출입문. H건설측은 이 부지를 복합문화체험단지로 개발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함종선 기자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평가사는 "논에서 잔디밭으로 토지형질이 변경됐더라도 그곳에 심어진 고급 소나무에 대해서는 모두 보상을 해 줘야 한다"며 "정원수로 심어진 소나무에 대해서는 나무 이전비가 지급되는데 나무 크기와 형태에 따라 그루당 최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대의 보상금이 지급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H건설 관계자는 "해당 부지는 복합문화체험단지로 개발하기 위해 매입했던 것"이라며 "과천시의 갑작스러운 토지수용으로 인해 우리는 피해를 본 상황이고, 지금도 신도시에서 빼 달라고 과천시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있던 나무를 뽑은 것은 맞지만 대신 더 멋있는 소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 없고, 보상금을 노리고 이런 일을 했다는 일부 주민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함종선·김원 기자 ham.jong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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