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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100분 영상, 사흘 꼬박 번역" 한한령, 中 아미의 덕질

중앙일보

입력

WeNeedBTS 번역팀은 지난 3월 TVN에서 방영된 '유퀴즈온더블록' BTS 출연편 100분 분량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사흘에 걸쳐 만든 자막 분량이 3000줄에 달했다고 한다. [비리비리 캡쳐]

WeNeedBTS 번역팀은 지난 3월 TVN에서 방영된 '유퀴즈온더블록' BTS 출연편 100분 분량을 중국어로 번역했다. 사흘에 걸쳐 만든 자막 분량이 3000줄에 달했다고 한다. [비리비리 캡쳐]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온 방탄소년단 100분짜리 영상 번역하는데 사흘 걸렸어요. 자막까지 포함해 3000줄이 넘더라고요. 그래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 보람 있어요”

방탄소년단(BTS)의 인기는 중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중국 음악 사이트 QQ뮤직의 BTS 팔로워는 199만8000명. 중국의 자체 동영상 사이트인 ‘비리비리’(bilibili)에는 조회 수 100만 회 이상 영상이 수두룩하다. 정식 홍보활동도, 공연도 없지만 중국인들은 그들의 음악을 찾는다.

BTS 中 팬클럽 ‘WeNeedBTS’ 한국어 번역자 인터뷰 #"BTS 하는 말 잘 전하고 싶어...수입없는 재능기부" #한국어 번역자 8명...중국 전역, 해외도 거주 #교정,기술팀도...본래 의미 전하려 교차 검증

BTS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소소한 일상들, 연습 장면, 자체 제작 예능 등 많은 영상을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팬들과 일상을 공유한다는 그들의 소통 철학은 음악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했다. 영상은 각국 팬들의 번역에 통해 세계로 퍼지며 BTS 인기 상승의 견인차가 됐다.

8일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에서 만난 BTS 영상 중국어 번역가 쟈페이(가명). 박성훈 특파원

8일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에서 만난 BTS 영상 중국어 번역가 쟈페이(가명). 박성훈 특파원

8일 BTS 영상의 중국어 번역자 쟈페이(38ㆍ가명)씨를 베이징에서 만났다. 중국 웨이보 'We Need BTS' 계정에 한국어, 영어로 된 BTS 영상을 중국어로 번역해 올리고 있다. 뜻밖에도 그녀는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본토 중국인이었다. 10대 때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재밌어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는 그녀는 이제 ‘부캐’,‘덕질’이란 단어를 한국인보다 더 자연스럽게 쓰는 중국인이 됐다.

어떻게 BTS 팬이 됐나
"HOT, 신화, NRG, 빅뱅… 어릴 때부터 한국 가수들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녀는 1984년생이다) 그래도 ‘덕질’(팬클럽 활동)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7년 BTS의 ‘봄날’을 들었는데 내 스타일이었다. 2018년 ‘아이돌’이란 노래가 나왔는데 가사 중에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얘네 뭐지? 아티스트라고? 조금씩 더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팬들 사이에 ‘신의 무대’로 불리는 2018년 MMA(멜론 뮤직 어워드·Melon Music Award) 영상을 봤는데 최고였다. 춤을 잘 추는 아이돌이 많지만 뭔가 달랐다."
그때부터 'ARMY'(BTS 팬클럽)가 된 건가
"아니다. 그때도 그냥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2019년 4월쯤이다. (2018년 뉴욕) 콘서트 영상에서 RM(BTS 멤버)이 한 말이 있다. “Please use BTS love yourself”. 자신을 사랑하는데 BTS를 써달라고 하더라. 충격이었다. 거기서부터 바뀌었다. BTS에 대한 이미지 그리고 내 삶에 대한 생각들이… 그냥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 사회가 바라는 사람 그런 게 돼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나를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내가 소중하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BTS 영상 번역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여기저기 팬카페를 들르다가 나중에 소식이 가장 빠르고 번역이 정확한 곳을 발견하게 됐다. 여기 WNS(We need BTS) 웨이보 계정의 BTS 영상 번역을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잘 돼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번역을 잘하지?' 하는 생각을 먼저 했었고, 그 후에 내가 BTS 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한국어 번역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그러던 차에 작년 7월 번역자를 뽑는다는 공지가 있어서 덜컥 지원서를 냈다가 시작하게 됐다"
몇 명이 함께 작업 하나
"처음에는 그냥 번역문장을 보내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ARMY 사이트다. 사람들이 영상 보고 싶으면 대부분 우리 계정에서 보니까 더 정확해야 한다. 한국어 번역하고 교정하는 팀 8명, 영어 번역ㆍ교정 8명, 일본어 6명이 있고, 번역 문장을 자막으로 만들고 붙이는 사람이 또 8명 있다. 중국 각지에 있고 미국, 호주 등 외국에 살면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소식은 밤에 나오니까 그쪽에서 해준다. 개인적으로 본 적은 없고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고 일하는 식이다. 리더는 자연스레 오래 일한 사람이 맡는다."
작업량은 어느 정도 되나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BTS가 나왔다. 팬들이 기다리니까 방송 끝나고 빨리 번역해서 올려주고 싶은데 사흘이 걸렸다. 여섯 사람이 초벌 번역을 했고 내가 다시 보면서 많이 고쳤다. 예능 번역은 말이 빠르고 자막도 계속 나오고… 그걸 하나하나 다 번역해야 하는데 양이 정말 많다. 100분짜리 영상에 3000줄이 넘었다. 올리고 나서 사람들이 ‘고맙다 잘 봤다’, ‘재밌다’는 댓글을 달아줄 때 보람을 느낀다. 우리 WNS 웨이보 계정의 하루 평균 페이지뷰는 500만 회가 넘는다"
중국 BTS 팬클럽 웨이보 계정 중 하나인 'WeNeedBTS'(WNS). 쟈페이(가명)는 이곳에 BTS 영상을 중국어로 번역해 올리고 있다. 하루 페이지 뷰수만 500만 회가 넘는다. [웨이보 캡쳐]

중국 BTS 팬클럽 웨이보 계정 중 하나인 'WeNeedBTS'(WNS). 쟈페이(가명)는 이곳에 BTS 영상을 중국어로 번역해 올리고 있다. 하루 페이지 뷰수만 500만 회가 넘는다. [웨이보 캡쳐]

7일 WNS 웨이보엔 BTS가 인도 방송과 한 한국어ㆍ영어 인터뷰가 중국어로 번역돼 올라와 있다. 번역한 사람, 교정본 사람, 기술진 이름(필명)까지 명확하게 나와 신뢰를 더한다. 6일엔 34분 분량의 자체 예능 ‘방림이네 사진관 오픈을 위해 모인 방탄소년단’ 영상이 번역됐다. 무료로 번역하고 돈을 받지 않고 공유하는 형식이다. 공식 활동 소식, 멤버 개인의 트위터 내용 등 거의 모든 내용이 중국어로 올라온다.

힘든 일인데 모두 자원봉사 형식인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웨이보를 통해서 누구나 무료로 볼 수도 있고, 비리비리 사이트에 영상을 올리지만 저작권이 우리에게 있지 않아 당연히 수익도 발생하지도 않는다. 5년 동안 사이트에서 받은 돈이 1만 위안(170만원)이 안 된다. 좋아서 하는 거니까…. 생각해 보면 ‘재능기부’다"
지난 7일 BTS가 인도 방송과 한국어로 독점 인터뷰한 18분짜리 영상이 중국어로 번역돼 WNS 웨이보 계정에 올라왔다. [웨이보 캡쳐]

지난 7일 BTS가 인도 방송과 한국어로 독점 인터뷰한 18분짜리 영상이 중국어로 번역돼 WNS 웨이보 계정에 올라왔다. [웨이보 캡쳐]

최근에 BTS 웨이보 일부 계정 폐쇄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때 중국의 한 연예인 선발 프로그램에서 일부 팬들이 지나치게 돈으로 후원하고 이런 게 문제가 됐다. 웨이보의 여러 팬클럽 계정들이 제재를 받았는데 '불똥이 튀어서' 그런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돈과 연관이 되니까 당국에서 일정 기간 제재를 한 것이다. 우리 WNS 계정에서는 돈과 관련된 것은 일절 없기 때문에 제재를 받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 ARMY들도 우리가 그런 걸 알기 때문에 더 신뢰한다."
지난해 BTS의 미국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 발언 논란이 컸다.
"우리는 이 영상을 번역하지 않았다. 아티스트로서 좋아하는 것뿐인데 정치나 역사 문제와 연관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히려 왜 WNS가 번역 안 하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원문을 들어보면 그때 그렇게 화제가 됐어야 할 일인가 싶다. 다만 당시 관련해서 (웨이보) 실검 순위를 올리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경우 움직이는 방식을 보통 알 수 있는데 그때는 아니었다."
지금 분위기는 어떤가
"여전히 공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오히려 그때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Butter’는 사람들 누구나 당연히 좋아할 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가가 예전에 "추락은 두려우나 착륙은 두렵지 않다"고 했는데 언젠가 잘 '착륙'했으면 좋겠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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