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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백신 저희 좀 주세요" AZ 부족에 이젠 병원끼리 읍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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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0세 이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접종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물량 부족으로 곳곳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 "예약자 동의 땐 얀센 잔여백신도 활용"

지난달 27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코젤병원에서 의료진이 어르신에게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7일 대전시 유성구 대전코젤병원에서 의료진이 어르신에게 백신을 신중히 접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간호사 등 병원 관계자들이 주로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에는 8일 “다음 주에 2 바이알(병) 정도 부족해서 보건소에 전화했는데 백신이 없다고 한다”며 “최소한 사전 예약자들은 접종해야 하는데 날짜를 조정해도 부족하다. 욕먹게 생겼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왔다. 여기엔 “예약 계속 잡으라고 해놓고 이제 와 백신이 없다는데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최대한 잔여백신이 안 나오게 하고 있는데 마지막 이틀에 예약한 분들은 접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프리랜서 김성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프리랜서 김성태

지방의 한 이비인후과 원장은 페이스북에 “다음 주 예약 물량이 47 바이알인데 29 바이알밖에 안 왔다. 200명분이 모자란다”며 “병원에 와서 컴플레인하면 난리 날 텐데 보건소에서는 마지막 물량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당국이 보유한 백신보다 더 많은 인원이 접종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에 따르면 4~19일 AZ를 맞게 될 예약자는 552만명이다. AZ 백신 재고는 501만회분으로 예약 인원보다 51만회분 정도 부족하다. 최소잔여형(LDS) 주사기를 써서 바이알당 접종 가능 인원을 11~12명으로 최대한 늘려도 상황에 따라 일부 접종자는 추후 새 물량이 도입될 때까지 일정이 밀릴 수밖에 없다.

창원시 보건소는 8일 관내 의료기관에 “14~19일 4차 백신 배정과 관련해 안내한다”며 “추가 (백신) 배정 계획이 없다. 창원시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고 전국이 동일하며, 질병관리청 전달사항이라 지자체에서 답변하기 어려운 점 양해바란다”고 공지했다. “배정된 백신을 사전 예약자 우선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라”고도 안내했다.

창원시보건소에서 관내 의료기관에 공지한 사항. 사진 최성근 경남의사회장 제공

창원시보건소에서 관내 의료기관에 공지한 사항. 사진 최성근 경남의사회장 제공

창원에서 이비인후과를 운영하는 최성근 경상남도의사회장은 이런 사항을 전달받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다음 주에 25개 바이알이 필요한데 13 바이알만 왔다. LDS 주사기도 용량에 따라 달라, 1cc짜리로 뽑으면 12명까지 맞힐 수 있는데 구하기가 어렵다. 2cc짜리로 맞히고 있어 최대한 뽑아도 1명 정도 더 접종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이번 주 잔여백신을 계산한 뒤 다음 주 예약자 가운데 일부를 이번 주에 당겨 접종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아침부터 전화를 몇십 통 돌렸는데 그래 봤자 5~6명 정도 당기는 것”이라며 “백신 부족은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예약자의 3분의 1은 당장 맞을 백신이 없는 상황”이라며 “의원에선 예약을 받았으니 빨리 백신을 달라고 하고 보건소에서는 물량이 없어 난감하다. 주민과 의료기관에서 민원이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백신이 부족해 아우성인 가운데 일부 위탁의료기관에선 간혹 개봉하지 않은 바이알이 남기도 한다. 그런데도 필요한 기관에 재분배가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병원 관계자는 인터넷 카페에 “(더는 예약자가 없어) 바이알이 하나 남는다. (보건소에) 언제 가져가느냐고 했더니, 한 바이알 가지러 가기 그렇다고 정 필요하면 가지러 오겠다고 한다”며 “다른 병원들은 백신이 없다고 난리인데 바이알 하나가 안 아쉬운가 보다. 남은 바이알을 보관만 하고 맞히지 말라고 하는데 일 처리가 참 그렇다”라고 적었다.

또 다른 병원 관계자도 “남는 백신 수거해 가서 모자라는 병원을 준다는 시스템도 없어 그냥 보관하고 있으라 한다. 엉망진창이다”고 적었다. 여기에 다른 병원 관계자가 직접 댓글을 달아 해당 병원이 어디인지를 물으며 “(남는 백신을) 저희 병원에 좀 달라. 보건소랑 얘기하겠다”고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추진단 관계자는 “예약자가 없어 바이알이 남을 경우 보건소가 이를 수거해 부족한 의료기관에 재분배해주는 역할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LDS 주사기와 보건소 여유 물량을 최대한 활용해 가급적 대부분 예약자에 접종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홍정익 추진단 예방접종관리팀장은 “보건소에서 보유한 백신으로 신속하게 보충하는 작업을 하면서 최대한 잔여 백신을 아껴 쓰는 방법으로 예약자들을 최대한 다 접종을 한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10일부터 얀센 접종이 시작되는 가운데 얀센 잔여백신이라도 있을 경우 이를 60세 이상 예약자에 최대한 접종하란 방침도 의료기관에 전달했다.

홍정익 팀장은 다만 “예약자가 AZ를 접종받는 것으로 알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예약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야 접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렇게 해도 불가피하게 접종을 못 하는 대상자가 생기면 별도로 안내하고 신속하게 접종 일정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내달로 일정이 밀리더라도 3분기 대상자 중 이들에 최우선 접종할 것이며, 백신은 종류에 상관없이 추가로 도입되는 백신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을 이들에 맞힐 계획이다.

정부가 이런 물량 부족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고 국민에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성근 회장은 “단순히 정부가 50만회분 부족하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겠느냐”며 “당장 다음 주 주말에 예약한 분들은 못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메시지를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3분기가 되면 대규모 접종이 있을 텐데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접종하게 되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며 “위탁의료기관 등과 정기적으로 소통해 생길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이우림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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