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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 극장,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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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팀 부장

강혜란 문화팀 부장

설마 이렇게나 ‘진심’일까 싶었다. 지난 5일 ‘환경의 날’에 열린 어느 멀티플렉스 극장체인의 팝콘 할인 이벤트 말이다. 일회용품 자제 차원에서 뚜껑 있는 다회용 식품용기를 가져오면 6000원에 가득 채워주는 행사였다. 너도나도 들고 온 것 중 김치통은 애교 수준. 아이스박스, 사골찜통, 김장독에다 파란 쓰레기 플라스틱통까지 등장했다. 전국 참여자가 2만명에 이르렀고 “오랜만에 극장 팝콘 맛 봤다”는 후기가 줄이었다.

환경의 날을 내세웠지만 다른 의도가 빤해 보였다. 팝콘 한 박스를 받고도 상영관 내에서 먹을 수 없어 들고 돌아간 이들에게 호소하고 싶었을 거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관계없이 극장에서 ‘팝콘 등 음식물 제한 규정’을 두는 것 너무 하지 않느냐고. 지난달 한국상영관협회와 멀티플렉스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통해 방역 당국에 호소한 것의 연장선상 마케팅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취식 제한 규정 전이나 후나 극장 내 감염은 확인된 바 없고, 현재도 커피 등 음료 반입은 허용되니 애꿎은 ‘팝콘 금지령’이 원망스러울 법하다.

극장 영화 국적별 관객점유율

극장 영화 국적별 관객점유율

팝콘 무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팝콘과 극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팝콘 산업이 흥한 것이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 극장 내 스낵이 일반화되면서다. 극장들이 이 ‘돈 튀기는 기계’를 독점하면서 한때 극장 수익 절반이 여기서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CGV 매출 가운데 티켓 판매(65.4%) 다음으로 큰 게 매점 판매(16.5%)로 광고 판매(9.3%)를 훨씬 웃돈다(2019년 집계 기준). 극장들은 코로나19 이후엔 수익 보전을 위해 포장·배달 팝콘에 심혈을 기울였고 덕분에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면서도 CGV 팝콘을 씹을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맛이 그 맛일 리는 없다. 극장 팝콘의 참맛은 영화 긴장감이 이완될 때 옆 사람 눈치 보며 절묘하게 씹는 재미 아니던가.

백신 접종이 늘고 있으니 극장 팝콘이 돌아올 날도 머지않았을 거다. 문제는 팝콘이 돌아온다고 관객이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단 사실이다. 오히려 올해 100만을 넘긴 영화들은 소위 ‘팝콘 무비’와는 거리가 있다. 픽사와 음악의 힘을 되새기게 한 ‘소울’, 넷플릭스 OTT로 익숙해진 이야기의 극장판 ‘귀멸의 칼날’, 아카데미 후광 ‘미나리’, 20년간 단골팬을 거느려온 ‘분노의 질주’ 등이다. 이 중 한국영화가 한 편도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올 5월까지 극장영화 관객 점유율에서 한국영화는 2017년 이후 4년 만에 1위를 미국(56.1%)에 내주며 20.7%에 그쳤다. 이것도 팝콘 탓일까.

강혜란 문화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