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홈런왕 유상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홈런왕 유상철’이란 게임이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나왔는데 꽤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서비스가 종료된 플래시 플레이어를 통해,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고도 웹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룰은 간단하다. 게임에 유상철이 등장하는데, 골대를 훌쩍 넘기는 강슛을 해야 고득점을 올리는 방식이다. 골대 넘는 슛이 많았던 유상철을 비꼬는 게임인 셈이다.

야구 선수도 아닌데 유상철은 어쩌다 홈런왕이 됐을까. 유상철은 파이팅 넘치게 저돌적으로 뛰는 선수였고, 상대와 부딪치는 걸 마다치 않았다. 상대는 유상철의 기세에 눌려 몸이 굳었다. 어쩌면 힘이 잔뜩 실린 그의 홈런 슛조차 상대에게는 움찔할 만한 위협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강슛이 사람들 뇌리에 유독 깊이 각인된 것은 그만큼 많은 찬스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홈런왕이란 별명은 그의 헌신과 열정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유상철은 골키퍼만 빼고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측면 수비수인 윙백으로 프로에 데뷔했으며 대표팀 첫 발탁은 최종 수비수인 스위퍼로서였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3차례 시즌 베스트11로 선정됐는데, 수비수(1994), 미드필더(1998), 공격수(2002)로 각각 뽑히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런 멀티 능력은 월드컵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 축구의 투혼을 보여준 2002년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선 미드필드와 스토퍼, 센터백까지 세 포지션을 오가며 궂은일을 도맡았다.

엄밀히 말하면 제법 골도 잘 넣었고, 결정적 한 방도 있었다. 1998년엔 K리그 득점왕(15골)을 차지했다. 2002년 폴란드전 쐐기 골로 한국 축구사상 첫 월드컵 승리(2-0)를 이끌었다. 은퇴 후 한쪽 눈이 실명 상태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는데, 동료는 물론 히딩크 감독도 몰랐다고 한다. “연습으로 극복하고 싶었다”며 자신을 엄격히 대했다.

그토록 강인했던 남자, 유상철이 지난 7일 췌장암 투병 중 숨을 거뒀다. 50세. 그는 너무 빨리 떠났고, 한국 축구는 전설을 잃었다. 은퇴 후 감독으로 적잖이 활동했지만, 그는 선수로서 더 빛나는 사람이었다. 시원스레 골대 위 창공을 가르던 그의 슛이 몹시 그리워질 것 같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