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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의 한국인 애니메이터 “구내식당 요리사가 물회도 해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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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인간으로 둔갑한 주인공 루카(왼쪽부터)와 친구 알베르토. 물이 닿으면 바다 괴물 모습으로 돌아가는 탓에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인간으로 둔갑한 주인공 루카(왼쪽부터)와 친구 알베르토. 물이 닿으면 바다 괴물 모습으로 돌아가는 탓에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햇살에 시시각각 반사되는 투명한 물결, 푸르른 바닷속 심연까지…. 17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이탈리아 북서부 바다 풍광을 아름답게 펼쳐낸 작품이다. 바다 괴물 소년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 이하 목소리 출연)가 새로 사귄 친구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와 함께 인간으로 둔갑해 인간 마을에서 자전거 경주에 출전하며 겪는 성장을 그렸다.

17일 개봉 ‘루카’ 만든 조성연·김성영 #조 “주변서 김치·된장 담그는 법 물어” #김 “봉준호 감독 초청 때 회사가 들썩”

이탈리아 출신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이 유년시절 친구 알베르토와의 추억을 이번 장편 데뷔작에 녹여냈다.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이탈리아 고전 영화,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오마주했다는 비주얼엔 여느 3D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수채화 감성이 가득하다. 이런 장면들을 빚어낸 제작진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도 있다. 픽사의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와 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를 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마스터 라이터는 컴퓨터 3D 가상공간 안에 빛으로 명암을 주는, 실사영화의 조명 같은 역할.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가상공간 속 배우와 세트를 카메라로 찍듯 장면에 담아내는 촬영팀과 유사한 역할이다.

조성연

조성연

“카사로사 감독님이 수채화 기법을 원하셔서 종이 질감을 스캔하고 붓·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결을 얻으려 했죠.”(조성연 애니메이터)

김성영

김성영

“(고기잡이배와 바다 괴물이 나오는) 오프닝 장면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웠어요. 취미인 낚시 경험을 살려, 미스터리한 느낌이면서도 물결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신경 썼죠.”(김성영 애니메이터)

바다 괴물 형상은 르네상스 시대 고지도 속 괴물 그림, 아시아의 용 등을 참고했다. 루카가 물 밖에 나가면 3436개 비늘과 꼬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변신 과정은 문어의 위장술에서 따왔다.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풍경은 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 해변마을 이탈리아 ‘친퀘 테레’ 지역을 본떴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과정을 재택근무로 했다고 한다. 조 애니메이터는 “인터넷에서 친퀘 테레 지방에서 시간대에 따라 해가 뜨고 지고, 그림자가 지는 걸 많이 찾아봤다. 예전 이탈리아에 갔을 때 빨래가 많이 걸려있어 빨래 그림자도 정성껏 표현했다”고 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루카와 줄리아가 둘이 밤에 지붕들을 뛰어다니다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고 상상에 빠지는 장면은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회사) 영감도 받았다”고 했다. 어릴 적 만화가를 꿈꾼 조 애니메이터는 홍익대 판화과를 나와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던 중 2000년 픽사에 입사했다.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월-E’ ‘소울’ ‘인사이드 아웃’ 등이 21년간 그의 손을 거쳤다.

한국인으로 느끼는 고충을 묻자 “아무래도 언어와 문화”라며 “어릴 적부터 미국에 살지 않아 힘든 게 있다. 좋은 점은 픽사에 외국인 사원이 많아 서로 모든 걸 이해한다”며 웃었다. “회사 식당에 어머니가 계신데 한국인인 요리사가 가끔 김치찌개·물회 등을 해준다”며 “요즘은 한국 문화가 세계에 퍼져서 친구들이 김치·된장을 어떻게 담그는지 저한테 물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학과를 나와 5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한 뒤 미국에 건너왔다. 대학원 유학 중 2012년 픽사에 입사해 ‘몬스터 대학교’ ‘코코’ ‘토이 스토리 4’ ‘소울’ 등에 참여했다. 그는 지난해 봉준호 감독을 직접 픽사에 초청해 ‘기생충’ 상영회를 열었을 때를 떠올렸다. “회사 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계단 위·옆까지 앉아서 볼 정도였죠. 한국영화를 이렇게 갈망하며 보는 상황이 됐구나, 자부심을 느꼈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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