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의 히잡 태권전사, 난민선수로 도쿄행

중앙일보

입력 2021.06.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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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이란의 키미아 알리자데(왼쪽)는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사진 알리자데]

이란의 키미아 알리자데(왼쪽)는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사진 알리자데]

2016년 8월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아레나에서 히잡(이슬람 여성이 머리와 목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을 쓴 소녀 태권도 선수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란 대표로 태권도 여자 페더급(57㎏ 이하)에 출전한 키미아 알리자데(23·당시 18세)는 니키타 글라스노비치(26·스웨덴)를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바로 그 소녀다. 1948년 런던올림픽 이후 68년 만에 이란 국적 여성이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란 국기를 펼쳐 들고 경기장을 누빈 알리자데는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이란 여성의 강인함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 도쿄에서는 꼭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외쳤다.

전 이란 올림픽 동메달 알리자데
지난해 차별·억압 피해 독일 망명
난민 대표로 29명, 12개 종목 출전
바흐 “올림픽 공동체 필수 구성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5년 만에 열리게 되는 도쿄올림픽에서 알리자데는 변함없이 태권도 여자 57㎏급에 출전한다. 우승을 향한 도전 의지도 그대로다. 다만 국적이 바뀌었다. 경기복에는 이란 국기와 ‘IRAN’이라는 글자 대신 ‘EOR’을 새기고 뛴다. ‘난민 올림픽팀’을 뜻하는 프랑스어(Equipe Olympique des Refugies) 약자다. 출전 비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부담한다.

지난해 독일로 망명한 그는 도쿄올림픽에 난민 올림픽팀으로 출전한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지난해 독일로 망명한 그는 도쿄올림픽에 난민 올림픽팀으로 출전한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이란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알리자데는 지난해 초 네덜란드 전지훈련 도중 자취를 감췄다. 며칠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독일 망명 사실을 알렸다. 그는 “나는 억압받는 수백만 이란 여성 중 한 명이다. 나를 선전 도구로 활용하는 그들(이란 당국)의 위선과 불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들은 앞에서는 내 메달을 칭찬하고 선전하지만, 뒤에서는 ‘다리를 쭉쭉 뻗는 건 여자의 덕목이 아니다’라고 모욕했다. 더는 이란을 위해 올림픽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조국을 등진 이유를 밝혔다. BBC는 지난해 말 ‘올해의 여성 100인’에 알리자데를 포함해 용기 있는 결단을 칭찬했다.

도쿄올림픽 출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독일 정부로부터 망명 승인은 받았지만, 국적은 취득하지 못했다. 독일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었다. IOC가 리우올림픽부터 도입한 EOR을 통한 참가로 목표를 바꿨는데, 코로나19로 대회가 연기되면서 1년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8일(한국시각) IOC가 발표한 도쿄올림픽 EOR 엔트리에 알리자데도 이름을 올렸다. 그간의 용기와 노력, 인내에 대한 보상이었다.

도쿄올림픽에는 히잡을 벗고 새롭게 도전하는 알리자데 등 29명의 난민 선수가 참가한다. 출신 국적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에리트레아 등 11개국이다. 다양한 이유로 국적을 포기하고 난민이라는 험한 길을 선택했다. 이들의 출전 종목은 태권도, 레슬링, 수영, 육상 등 12개 종목이다.

토마스 바흐(68) IOC 위원장은 9일 “이제 EOR은 올림픽 공동체의 필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이 전 세계에 연대와 회복, 희망의 가치를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원(74)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도 이날 “알리자데 등 태권도 종목에 출전하는 3명의 EOR 선수를 응원한다. 전 세계에서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수백만 난민에게 희망을 주고, 난민에 대한 지구촌의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맡아주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한편, IOC는 북한의 도쿄올림픽 불참을 공식화했다. 제임스 매클리오드 IOC 올림픽 연대 국장은 “4월 불참 통보 이후 (북한과)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이젠 그들이 갖고 있던 종목별 출전권의 재분배를 논의할 시점이다. (올림픽 출전을 기다리는) 다른 선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여름올림픽에 불참하는 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3년 만이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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