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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에 김치찌개·물회…韓애니메이터도 놀란 픽사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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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바다 괴물 소년 루카(오른쪽부터)가 친구 알베르토와 인간 마을을 모험하는 내용을 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바다 괴물 소년 루카(오른쪽부터)가 친구 알베르토와 인간 마을을 모험하는 내용을 그렸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햇살에 시시각각 반사되는 투명한 물결, 푸르른 바닷속 심연까지…. 17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이탈리아 북서부 바다 풍광을 아름답게 펼쳐낸 작품이다.

17일 개봉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루카' 참여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

바다 괴물 소년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 이하 목소리 출연)가 새로 사귄 친구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와 함께 인간으로 둔갑해 인간들 마을에서 자전거 경주에 출전하며 겪는 성장을 그렸다. 바다 밖은 위험하다는 부모 몰래 빠져나온 루카는 알베르토와 파스타‧젤라토를 실컷 먹고 대도시 제노바에서 온 인간 친구 줄리아(엠마 버만)와 가파른 지붕, 골목을 누비며 우주의 토성까지 공상을 펼친다. 루카와 알베르토는 피부에 물이 닿으면 다시 비늘 뒤덮인 몸으로 돌아가는 탓에, 고양이에게 의심받는 찰나의 장면들도 재밌다.

이탈리아 출신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이 유년시절 친구 알베르토와의 추억을 이번 장편 데뷔작에 경쾌하게 녹여냈다.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이탈리아 고전 영화, 일본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오마주했다는 비주얼엔 여느 3D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수채화 감성이 가득하다. 이런 장면들을 빚어낸 제작진엔 한국인 애니메이터들도 있다. 픽사의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와 김성영 레이아웃 아티스트를 9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마스터 라이터는 컴퓨터 3D 가상공간 안에 빛으로 명암을 주는, 실사영화의 조명 같은 역할. 레이아웃 아티스트는 가상공간 속 배우와 세트를 카메라로 찍듯 장면에 담아내는 촬영팀과 유사한 역할이다.

“카사로사 감독님이 수채화 기법을 원하셔서 종이 질감을 스캔하고 붓‧크레용으로 그린 듯한 결을 얻으려 했죠.”(조성연 애니메이터)

“(낚싯배와 바다 괴물이 나오는) 오프닝 장면이 재밌으면서도 어려웠어요. 취미인 낚시 경험을 살려, 미스터리한 느낌이 나면서도 물결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신경 썼죠.”(김성영 애니메이터)

3436개 비늘 덮은 바다괴물…르네상스 지도서 따와

바다 괴물 형상은 르네상스 시대 고지도 속 괴물 그림, 아시아 지역 용 등을 참고했다. 루카가 물 밖에 나가면 3436개 비늘과 꼬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변신 과정은 문어의 위장술에서 따왔다.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마을은 해안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 마을을 뜻하는 '친퀘 테레' 지역을 본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마을은 해안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 마을을 뜻하는 '친퀘 테레' 지역을 본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풍경은 절벽으로 연결된 다섯 개 해변마을 이탈리아 ‘친퀘 테레’ 지역을 본떴다. 이번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해 전과정이 재택근무로 이뤄진 터. 조 애니메이터는 “인터넷에서 이탈리아 친퀘 테레 지방에서 해가 시간대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고 그림자가 지는지 많이 찾아봤다. 예전에 이탈리아에 갔을 때 빨래가 많이 걸려있어서 빨래 그림자도 정성 들여 표현했다”고 했다. “작품마다 지역 문화를 조사해주는 회사 내 담당자의 도움도 받았다”면서다.

김 애니메이터는 “루카와 줄리아가 둘이 밤에 지붕들을 뛰어다니다 망원경으로 목성을 보고 상상에 빠지는 장면은 지브리(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회사)스러운 영감도 받았다”고 했다. 또 정체를 들킬까봐 두려워하던 루카의 변화에 공감한 부분도 설명했다. “새 애니메이션을 진행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바뀐다고 할 수 있는데 본인이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느냐가 영향을 미친다”면서 “미국이란 나라에 와서 나 자신을 그대로 내보이며 살기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루카와 친구들을 이해하며 작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픽사 구내식당 김치찌개·물회 나오죠"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 참여한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 (Photo by Deborah Coleman / Pixa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 참여한 조성연 마스터 라이터. (Photo by Deborah Coleman / Pixa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어릴 적 만화가를 꿈꿨던 조 애니메이터는 홍익대 판화과를 나와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던 중 2000년 픽사에 입사했다.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월-E’ ‘소울’ ‘인사이드 아웃’ 등이 21년간 그의 손을 거쳤다. “픽사 내 한국 아티스트는 10여년 전과 같이 아직 10~20명 선이다. 그간 많은 인재가 들어왔다 나가기도 하고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도 하고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 느끼는 고충을 묻자 “아무래도 언어와 문화”라며 “어릴 적부터 미국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게 있다. 그런데 좋은 점은 픽사에는 외국인 사원이 엄청 많아서 서로 모든 걸 이해한다”며 웃었다. “회사 식당에 어머니가 한국인인 요리사가 있는데 가끔 김치찌개‧물회 같은 특이한 한국음식을 해준다”면서 “요즘은 한국 문화가 세계에 퍼져서 친구들이 김치‧된장을 어떻게 담그는지 저한테 물어보기도 한다”고 했다.

"봉준호 초청하자 픽사직원 몰려…자부심 느꼈죠"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 참여한 김성영(영어이름 션 김) 레이아웃 아티스트. (Photo by Deborah Coleman / Pixa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 참여한 김성영(영어이름 션 김) 레이아웃 아티스트. (Photo by Deborah Coleman / Pixar)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김 애니메이터는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학과를 나와 5년간 애니메이터로 일한 뒤 미국에 건너왔다. 대학원 유학 중 2012년 픽사에 입사해 ‘몬스터 대학교’ ‘굿 다이노’ ‘도리를 찾아서’ ‘코코’ ‘토이 스토리 4’ ‘소울’ 등에 참여했다. “한국에서 TV 만화 시리즈를 했을 땐 비슷한 형태의 작업을 오랜 시간 반복한다는 느낌이었는데 픽사의 극장판 작업은 1년에 한 번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진행돼 매번 공부 거리도 많고 오랫동안 반복하는 느낌이 적다. 최근 와선 여러 (차별 반대) 움직임도 있고 외국인이라고 배척하기보다 기회를 주려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봉준호 감독을 직접 픽사에 초청해 ‘기생충’ 상영회를 열었을 때 특히 변화를 느꼈다고 했다. “상영 후 질의응답을 진행했는데 회사 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계단 위‧옆까지 앉아서 볼 정도였죠. 한국영화를 이렇게 갈망하며 보는 상황이 됐구나, 자부심을 느꼈죠.”

한국, 애니로 만들면? "역동성·갈등·화합 담고 싶죠"

최근 디즈니‧픽사에선 다양한 문화권 출신 창작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추세다. 두 사람에게 한국에 관한 추억을 애니메이션에 담는다면 어떤 장면이 상상이 되는지 물었다.

조 애니메이터는 “어릴 적 친구와 놀이터에서 그네 타며 모래 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 많이 놀았다”면서 “그런 추억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애니메이터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역동성이 있잖아요. 전쟁 이후 너무 빨리 성장했죠. 그 때문에 생긴 세대갈등‧지역갈등이 묻어나면서도 어떻게든 화합해가는 내용을 담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서 알베르토와 루카가 생전 처음 젤라토 맛에 눈뜨는 장면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디즈니/픽사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서 알베르토와 루카가 생전 처음 젤라토 맛에 눈뜨는 장면이다.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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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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