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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돈 쓰라고 가계 소득 늘려줬더니, 늘어난 건 저축?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4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4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충격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정부가 곳간 문을 활짝 열고 가계 소득을 늘려줬지만, 가계는 오히려 저축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진작에 따른 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급한 재난지원금 등 각종 지원책의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은행이 9일 발표한 ‘2020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1881달러를 기록했다. 전년(3만2204달러)보다 줄어들며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원화 약세의 영향이다. 반면 원화 기준 1인당 GNI는 3762만원으로 전년(3753만9000원)보다 0.2% 늘었다.

 1인당 GNI는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총소득을 인구로 나눈 통계다. 한 나라 국민의 평균 생활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다.

코로나19의 충격으로 지난해 경제성장률(-0.9%)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국민소득 감소가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수치상으로 가계의 주머니 사정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 정부 지출의 이전 효과 덕이다.

 실제로 지난해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는 2095만원으로 전년보다 2.3% 늘어났다. PGDI는 정부와 기업이 가져간 소득을 빼고 세금과 이자 같은 필수 지출을 뺀 나머지다. 가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다. 가계의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커진 정부 씀씀이에 소득 늘어난 가계 소비대신 저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커진 정부 씀씀이에 소득 늘어난 가계 소비대신 저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것을 뒷받침하는 수치는 또 있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나라 밖으로 나간 근로자 송금액과 해외 원조, 국제기구 분담금 등을 뺀 국민총처분가능소득(GNDIㆍ1945조9000억원)에서 전체의 55.8%를 차지하는 가계 소득은 1년 전보다 2.5%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 소득이 8.2% 줄어든 것과 비교된다. 정부 소득은 전체 소득의 21.8% 수준이다.

 임금 급여와 사회부담금 등을 포함한 피용자(피고용자) 보수도 1년 전보다 0.5% 늘었다. 전년도 증가율(5.2%)에는 못 미치지만 증가세는 이어갔다. 반면 기업의 영업잉여(-4.3%)는 뒷걸음질 쳤다. 전년도(-9.0%)보다 감소 폭이 줄기는 했지만 이익은 줄어든 모습이다. 그 결과 전 국민소득에서 임금 등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67.5%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1년 1/4분기 국민소득(잠정)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9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1년 1/4분기 국민소득(잠정) 설명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영업잉여가 줄어도 고용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노동소득분배율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오히려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노동의 하방 경직성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이어 “지난해 정부의 적극적 고용대책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정부가 벌어들인 것보다 더 써가며 가계 소득을 늘렸지만 정작 가계는 이 돈을 소비하기보다는 쌓아둔 데 있다. 높아진 저축률이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총저축률은 35.9%로 2018년(35.9%) 이후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가계의 순저축률은 11.9%로 1년 전(6.9%)보다 5.0%포인트나 높아졌다. 소득이 늘었지만 소비를 줄인 영향이다.

한은은 “민간총저축률은 민간의 국민총처분가능소득이 증가(3.3%)했지만 최종소비지출이 감소(-4.1%)하면서 전년(27.7%)보다 4.3%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줬음에도 저축률이 올라간 것은 재난지원금 등 각종 지원책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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