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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공포 마케팅'에 넘어가 산 물건 사용 후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40)

물건을 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 마케팅 수업을 들으며 배우게 된 이야기인데, 당시에는 ‘그런 거에 속는 사람도 있나?’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안 속는다며 자신만만해하던 당시가 무색하게도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여럿이 두려움에 속아 산 것들이다.

첫 번째로 소개할 물건은 모니터를 보고 있는 지금도 쓰고 있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이다. 사실 내 시력은 양쪽이 1.0으로 십 년 전 라식수술을 통해 간신히 안경을 벗었다. 몇백만 원짜리 수술을 간절히 바랐을 정도로 오랫동안 안경을 써왔다. 초등학생 시절 친구의 안경이 부러워 부모님을 졸라 안경원에 갔던 이후 20년은 쓴 것 같다.

시력이 좋지 않아 꽤 두꺼운 안경을 오래도록 썼다. 운동을 좋아해 툭하면 안경을 깨 먹던 고등학생 시절과 멋 부리고 싶어 불편한 렌즈를 끼고 다니던 대학생 시절, 화생방 방독면 안에서도 안경을 끼던 군인 시절에는 안경을 벗는 그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토록 바라던 대로 안경을 벗었는데, 스스로 돈을 주고 다시 안경을 사서 끼고 있다. 그야말로 모순이다.

어느 날엔가 눈이 뻑뻑해 동료에게 말하니 그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쓴다며 알려주는 게 아닌가. 블루라이트는 모니터나 스마트폰 등에서 나오는 파란색 빛을 뜻하는데 노출되면 안구건조증을 유발하거나 망막에 손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는데, 사실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아 심드렁했다. 안경을 파는 온라인 페이지의 광고를 보니 없으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스마트폰에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이 왜 있겠냐는 문구에 넘어갔다. 역시 마케팅은 위대하다.

'공포마케팅'에 넘어가 온라인에서 구매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사진 unsplash]

'공포마케팅'에 넘어가 온라인에서 구매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사진 unsplash]

포털에 블루라이트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 효과’가 뜬다. 사람들이 그만큼 많이 궁금해한다는 증거다.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다. 여전히 야근하거나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면 눈이 뻑뻑한데, 안경을 쓰고 있으니 좀 나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느낌일 뿐이다. 내 눈의 뻑뻑함을 무슨 온도계처럼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고, 다이어트처럼 눈에 보이는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눈의 뻑뻑함에는 안약이나 눈 마사지가 직접적인 개선 효과는 훨씬 크다. 결국 사기 전과 똑같다.

두려움이 낳은 쇼핑으로 산 두 번째 물건은 휴대용 칫솔 살균기다. 직장인의 경우 보통 점심을 먹고 회사에서 양치하게 되는데, 이때 칫솔을 보관하는 용으로 쓰인다. 양치하던 동료가 화려한 UV 불빛을 뽐내며 칫솔을 꺼내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었다. 역시 이런 종류의 쇼핑은 보통 주변 사람들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된다.

건치를 자랑하는 그의 말에 따르면 칫솔모는 세균이 번식하기 쉽기 때문에 방치하면 양치를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휴대용 칫솔살균기 판매사이트의 내용을 보면 공포심은 더해진다. 칫솔 살균기에 보관하지 않은 칫솔에는 화장실 변기보다 더 많은 세균이 있다는 등 사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살균기를 쓰든 안 쓰든, 칫솔은 건조가 중요하다. [사진 unsplash]

살균기를 쓰든 안 쓰든, 칫솔은 건조가 중요하다. [사진 unsplash]

휴대용 칫솔 살균기의 경우 사용이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구매 후 잘 쓰고 있다. 건전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따로 전원 연결할 필요도 없고, 칫솔만 넣고 닫으면 자동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그 효과를 느낄 수 없다는 것뿐이다. 칫솔 살균기를 쓰기 전에도 사실 별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살균기 사용 후에도 충치가 생겨 치과에 가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건전지가 다 닳은 것을 모르고 작동하지 않는 칫솔 살균기를 몇 달간 쓴 적도 있다. 전원이 들어오는지 확인을 안 할 정도로 차이를 못 느끼니 ‘사실 양치하고 칫솔만 잘 건조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거면 칫솔 살 때 주는 기본 플라스틱 뚜껑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효과를 못 느낀다고 투정을 부리는 이유가 몇만 원 하는 휴대용 칫솔 살균기를 산 게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냥 ‘필요 없는 것은 산 게 아닐까?’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 싫은 것이다.

소비자가 필요없는 것을 사게 만드는 기업의 마케팅 전술.[사진 unsplash]

소비자가 필요없는 것을 사게 만드는 기업의 마케팅 전술.[사진 unsplash]

위의 두 가지 물건의 기능에 대한 의심은 없다. 다만 사용자가 그 효과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기 전에는 그 필요성을 몰랐는데, 광고를 보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는 점에서 마케팅 수업에서 들었던 ‘공포 마케팅’이라는 내용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스스로가 마케팅에 가장 잘 넘어가는 소비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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