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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軍, 이미 2년 전 성폭력 근절 개혁안 완료 보고했다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군 성폭력 문제를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던 정부가 2년 전 국회에 성공적으로 개혁을 마쳤다고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김광진 청와대 청년비서관 등 여권 인사 다수가 관여해 대책을 마련했다지만, 현실은 이번 공군 여중사 성폭력 사건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방부, "군 적폐청산위 권고 대거 이행" #크게 홍보하고 TF 구성해 실태조사 벌여 #"적폐척결한다던 청와대는 왜 방치했나"

8일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 적폐청산 위원회’의 권고안(2018년 2월 권고)에 따라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부분의 과제들을 이행했다고 지난 2019년 6월 국회에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서욱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서욱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군 적폐청산위는 국방부가 청와대 지시로 “군의 정치개입과 인권침해 등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며 만든 한시적인 위원회였다.

위원장을 포함해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군 적폐청산위에는 군 관련 인사를 빼면 김광진(현 청와대 청년비서관), 권인숙(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 국방위 소속), 고상만(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등 여권 인사들이 대부분 참여했다.

위원회는 활동 결과물로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안을 냈다. 특히 군 성폭력 근절 개선안을 따로 뽑아 강조했다.

이 권고안에는 현재 거론되는 군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들이 상당수 담겼다는 게 군 안팎의 시각이다. 가령 미국 국방부의 성폭력 방지조직인 SAPRO(Sexual Assault Prevention and Response Office)를 본뜬 민간인 참여 독립기구 신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인력 확대 및 양질의 국선변호사 서비스 확보, 군 성폭력 상담관의 비밀 유지 권한 보장 등이 제안됐다.

지난 2017년 9월 25일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국방부 중회의실에서 ‘군 적폐청산 위원회’ 위촉식 후 위원들과 1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만 위원(현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권인숙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지원 위원장(전 청소년보호위 위원장), 송 장관, 김광진 위원(청와대 청년비서관). [사진 국방부]

지난 2017년 9월 25일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국방부 중회의실에서 ‘군 적폐청산 위원회’ 위촉식 후 위원들과 1차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상만 위원(현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권인숙 위원(더불어민주당 의원), 강지원 위원장(전 청소년보호위 위원장), 송 장관, 김광진 위원(청와대 청년비서관). [사진 국방부]

당시 국방부는 이런 권고안을 수용해 “적폐청산을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보도자료까지 내며 크게 홍보했다. 또 군 적폐청산위 활동과 별도로 민ㆍ군 합동 ‘성범죄 특별대책 전담팀(TF)’을 구성해 군내 성폭력 실태 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TF 활동 결과, 이번 공군 여중사 사건처럼 ‘위계에 의한 성폭력’ 양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국방부의 국회 보고 내용에 따르면 모니터링 대상 29건 중 이런 경우가 76%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국방부는 이런 TF 활동 결과까지 참작해 군 적폐청산위의 권고안을 이행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국회 보고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의 이행률은 매우 높다.

권고안이 나온 지 1년 3개월 뒤인 지난 2019년 5월 기준으로 총 14개 과제 중 13개를 완료하거나 정상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1개 과제(장성급 장교 성폭력 사건 처리결과 재조사)만 지연되고 있다면서다.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지난 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하지만 장기간 성추행 피해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 사건이 불거지면서 국방부의 이같은 성과 자랑이 유명무실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도대체 지난 4년 동안 뭘 했다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군 탓만 할 게 아니라 적폐로 내세우며 척결하겠다던 청와대도 왜 관리ㆍ감독하지 않고 방치했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방부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국방부는 “군 적폐청산위의 권고 의제를 정상적으로 이행 중”이라며 “피해자를 위한 관련 법령 개정 등을 지속해서 추진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7일 출범한 국방부 ‘성폭력 제도개선 TF’ 활동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를 놓고 이번에도 용두사미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이미 3년 전에 TF를 만들어 나온 결과와 이번에 나올 결과가 뭐가 다를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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