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 40년만에『종용록』 출간한 성본 스님 "경전 읽으며 지식 아닌 지혜 얻어야"

중앙일보

입력 2021.06.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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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어록 읽기는 지식의 향유가 아니다. 우리 안에서 지혜를 창조하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2일 서울 종로구 삼봉로에서 성본(性本ㆍ71) 스님을 만났다. 그는 최근 『벽암록(碧巖錄)』과 함께 불교 선어록집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종용록(從容錄)』(민족사)을 출간했다. 각 권 600페이지가 넘는 여덟 권짜리 두툼한 책이다. 이 책을 출간하기까지 반평생이 걸렸다. 대체 이 책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 걸까. 성본 스님에게 “왜 종용록인가?”를 물었다.

방대한 작업이다. 『종용록』출간까지 얼마나 걸렸나.
“서옹 스님께서 조계종 종정을 지내실 때였다. 뵐 때마다 선(禪)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하루는 스님께서 일본에 가서 선어록을 공부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코마자와 대학의 세미나에서 종용록을 접했다. 그로부터 선승들의 평창을 읽고, 사유하며, 출간까지 40년이 걸렸다.”
왜 굳이 『종용록』이었나.
“『종용록』은 선어록의 기본 교재다. 그걸 공부하지 않고서 다른 교재를 공부할 수는 없다. 기본 교재를 보다 보면 다른 어록을 볼 수 있는 안목이 열린다. 선승들의 법문이 담긴 『벽암록』과 『종용록』이 그런 책이다.”

『벽암록』은 원오극근 선사가, 『종용록』은 만송 선사가 평창했다. 둘 다 많은 선승의 법문, 선시, 게송 등 선사상의 알갱이를 담고 있는 법어록집이다. 한마디로 선불교의 고전이다.

『벽암록』과 『종용록』의 차이점은 뭔가.
“『벽암록』에는 임제종의 가풍이 담겨 있고, 『종용록』에는조동종의 가풍이 담겨 있다. 임제종을 창시한 임제 선사를 ‘임제 장군’이라고도 부른다. 임제종 가풍은 어지간한 망념이나 중생의 생각을 단박에 칼로 쳐버린다. 그런 기질로 설법한 강의록이 『벽암록』이다.”
그럼 『종용록』은 어떤가.
“『종용록』은 조동종의 가풍이다. 조동종 선풍(禪風)의 특징은 ‘황제와 신하’로 요약할 수 있다. 황제는 항상 자기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는 진여본심을 말하고, 신하는 황제의 명을 받아 일상생활에서 활동하는 걸 뜻한다. 황제는 진여본심이고, 신하는 방편지혜다. 선정과 지혜다. 『종용록』은 황제와 신하가 자기 본분사의 역할을 여법하게 하는 묘용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한 수행승이 원오극근 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어떤 것이 협산의 경계입니까?” ‘협산’은 원오극근의 거주지이자 산 이름이기도 했다. 원오극근은 이렇게 답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산중으로 돌아가고, 새는 꽃을 입에 물고 벽암(碧巖ㆍ푸른 바위 절벽)에 떨어뜨린다.” 이 구절에서 ‘벽암’을 따와 『벽암록』이 됐다. 반면 『종용록(從容錄)』의 명칭은 만송 선사가 주석했던 종용암(從容庵)이란 암자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한국에서 『벽암록』은 많이 알려져 있다. 반면 『종용록』은 낯설다. 왜 그런가.
“중국 당나라 때 선불교의 다섯 종파가 생겨났다. 위앙종ㆍ 임제종ㆍ조동종ㆍ운문종ㆍ법안종의 선종(禪宗) 5가(五家)다. 이 중에서 임제종과 대혜 선사의 간화선이 한국 선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에 반해 조동종은 일본 선불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 『벽암록』에 비해 『종용록』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임제종과 조동종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나.
“없다. 선 수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조동선과임제선, 그리고 간화선은 본질적으로 공부법에 차이가 없다. 다만 간화선이 ‘무(無)자’ 화두를 더 제시했을 따름이다. 그런데 간화선의 ‘무(無)자’ 화두도 조동선에서 말하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통한다.”  
‘회광반조’가 무슨 의미인가.
“광(光)은 빛 광자다. 내가 대상 경계를 보는 빛을 광이라고 한다. 회(回)는 돌이킬 회자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빛을 거두라는 말이다. 그럼 ‘반조(返照)’는 뭔가. 자신의 진여본심을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다. ‘회광반조’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눈을 거두고, 내면의 본성을 자각하라는 뜻이다.”
조동종의 주된 수행법은 뭔가.
“조동종의 수행법은 선어록을 공부하며 사유하는 그 자체다. 좌선이 뭔가.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앉아서 사유하는 것이다. 앉음이 핵심이 아니라 사유가 핵심이다. 그건 간화선도 마찬가지다. 가령 ‘마삼근’이란 화두가 있으면, ‘마삼근, 마삼근, 마삼근’하면서 앉아만 있으면 곤란하다. ‘마삼근’이라고 설한 선승의 법문을 찾아서 참구(參究ㆍ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하고 사유해야 한다.”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종고 선사는 조동종의묵조선 수행을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나. 이 때문에 한국의 조계종도 조동종의묵조선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큰 오해가 있다. 대혜 선사가 비판한 것은 정통 묵조선이 아니었다. 정법에서 벗어난 삿된 묵조선, 다시 말해 묵조사선을 비판했다. 대혜 선사의 어록이 30권이다. 그걸 읽어보면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대혜 어록을 읽어보지도 않고서 무작정 묵조선을 비판하는 사람이 많다. 간화선도 마찬가지다. 가령 정법에서 벗어난 삿된 간화선이 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겠나.”
선 수행과 마음공부에서 왜 ‘사유’를 강조하나.
“우리가 ‘도(道)’라는 말을 쓰지 않나. 무엇이 도입니까. 무엇이 부처입니까. 이게 선승들 법문의 가장 핵심이다. 가령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그럼 궁금하지 않나. 그게 어떤 도일까. 그걸 사유해 봐야 한다. 대체 어떤 도이기에 공자는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나. 그리고 ‘도를 들으면’이라고 했는데, 듣는다는 게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걸까. 그런 걸 사유해 봐야 한다. 그걸 안 하면 어떻게 그 참뜻을 알 수 있겠나.”
일본 유학 시절, 『종용록』작업을 결심하고 무려 40년이 걸렸다. 만만찮은 작업이다. 『종용록』출간 작업이 개인적으로 어떤 시간이었나.
“나는 출가한 뒤에 선어록 공부의 원력을 세웠다. 일본에 가서도 생각했다. 한국의 선불교가 정통인데, 『종용록』도 한국에서 출간해야겠다. 의사가 됐다고 다 좋은 의사가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스님도 마찬가지다. 스님이 됐다고 다 좋은 스님이 되는 건 아니다. 대중에게 바른 지혜의 방편을 설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자신도 바른 삶을 살고, 세상에서도 일체중생과 함께 공덕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스님이다. 『종용록』출간 작업은 내게 끊임없이 사유하는 수행의 시간이었다.”
일반인이 『종용록』을 읽으며 사유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세상에는 고전이 많다. 고전을 읽다 보면 지식을 향유하게 된다. 그런데 경전은 다르다. 불교의 선어록도 다르다. 지식의 향유가 아니다. 경전은 지혜의 힘을 키우게 한다. 만약 선어록 읽기가 지식의 향유가 된다면 곤란하다. 선어록을 통한 사유는 자신의 지혜를 창조하는 힘을 키우게 한다. 그 힘으로 삶의 문제와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일을 창조적으로 풀어가게 된다.”

◇벽암록과 종용록=『벽암록』은 중국 당나라 이후 불교 선승들의 대표적인 선문답을 가려 뽑아 설명한 책이다. 설두중현 선사가 펴낸 ‘송고백칙’에 원오극근 선사가 내린 해석을 첨가했다. 『종용록』은 중국 조동종의굉지정각 선사가 고칙공안 중에서 100칙을 선별하여 송고를 더하고, 만송행수 선사가 내린 해석을 첨가했다. 1125년에 처음 출간된 『벽암록』과 100년 뒤에 출간된 『종용록』은 선문의 쌍벽으로 불린다.

◇성본 스님=1950년 경남 거창 출신. 속리산 법주사에서 출가. 동국대 불교대학 졸업 후 일본 아이치 가쿠인 대학원에서 석사, 도쿄의 코마자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교수 역임. 현재 한국선문화연구원 원장으로 선어록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선문화연구원(zenmaster.co.kr) 앱을 통해서 ‘종용록 강설’ ‘임제록’ ‘육조단경’ ‘대승기신론’ 등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다. 저서로 『벽암록』『임제록』『좌선으로의 초대』『대승기신론 역주』『선의 역사와 사상』등이 있다.

글·사진=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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