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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법무연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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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법무연수원의 모태는 1951년 설립된 형무관학교다. 형무소와 형무관이라는 일제 시대 이래의 용어가 1960년대 들어 교도소와 교도관으로 바뀌면서 이 기관의 이름도 교도관학교로 변경됐다.

법무연수원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건 1972년이다. 교도관학교를 흡수 통합하면서 설립된 법무연수원은 그때부터 검사 등 법무부 공직자 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곳에 연구위원이라는 직위가 생긴 건 1986년의 일이다. 전형적인 위인설관이었다. 당시 권력은 몇 년 뒤 ‘6공 황태자’로 불리게 될 박철언 검사를 검사장으로 승진시키고는 마땅한 자리가 없자 검사장급 보직으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직을 신설했다.

이후 이 자리는 검사장 또는 검사장 승진을 눈앞에 둔 검찰 고위 간부들이 소일 삼아 잠시 거쳐 가는 명예직이 됐다. 성격이 달라진 건 2000년대 초반 법무부가 비리에 연루된 한 고검장을 이 자리로 보내면서부터다. 이후 연구위원직은 승진에서 누락됐거나 감찰 또는 수사를 받는 이들이 퇴임 직전에 가는 자리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법무·검찰 내 정치 갈등 격화의 와중에 연구위원직은 또 한 번 퇴색했다. 대표적인 보복 인사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이른바 ‘우병우 사단’으로 불렸던 검사장 4인이 한꺼번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던 게 최신 사례다. 정권 관련 수사를 지휘하다가 이 자리로 쫓겨났던 한동훈 검사장 역시 산 증인이다. 이번 고위 간부 인사에서도 정권에 밉보였던 간부들의 연구위원 발령은 어김없이 재연됐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여봐란듯이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온갖 간난신고 끝에 기어이 정상의 턱밑까지 도달하면서 정권 재창출 시 또 한 번 검찰총장직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피고인 중앙지검장’이라는 치욕을 달게 넘겼던 그가 ‘피고인 검찰총장’이라고 해서 마다할 것 같지는 않다. 만에 하나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존경하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의 선례에 따라 확정판결 때까지 버티면 그만일 터. 물론 장밋빛 구상이 현실화할지는 미지수겠지만 말이다.

시국이 잊었던 옛 노래를 소환했다. “세상은 삐까번쩍 거꾸로 돈다네. 제자리 찾아간다네.”(김호철, ‘포장마차’)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