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Review] 공공기관 MZ세대, 공민지가 떴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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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잇따라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이들은 각 직장에서 조직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해 초 삼성전자·SK하이닉스·네이버 같은 민간 대기업에서 20~30대 직원들이 성과급 배분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던 배경이다. MZ세대라는 용어를 의인화해 ‘민지세대’나 ‘민지네’라고 부르기도 한다.

선배들의 부당한 관행에 반기
식사비 뻥튀기, 거래명세서 조작
부당한 수당 챙기기 등 바로잡기
“내 돈 아니지만 우리 세금 낭비”

일방적 업무지시, 강압적 언행
위계적·수직적 조직문화도 태클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MZ세대, 이른바 ‘공민지’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과거 일부 공공기관 직원들이 보신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과 달리 최근 20~30대 공민지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 관행에 문제 제기하는 공공기관 민지세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기존 관행에 문제 제기하는 공공기관 민지세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선 최근 한 공공기관의 부적절한 공금 사용을 꼬집는 글이 화제였다. 해당 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저연차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A씨는 “특정 공공기관에서 이득 취하는 꿀팁”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식사비 부풀리기 ▶회의 참석 품앗이 ▶거래명세서 조작 등을 문제 삼았다.

예컨대 A씨는 편법으로 캡슐커피를 구입하는 실태를 고발했다. 문구점에 캡슐커피 수백만원어치를 사달라고 요청한 뒤 사무용품비로 커피 대금을 결제한다는 주장이었다. 사무용품비 예산을 사실상 간식비로 사용한 셈이다. 그동안 관행이라든지, 원만한 비용 처리를 위해 불가피한 방식이란 이유 등으로 묵인했던 업무 행태다. 결국 KISTEP는 “특별 점검을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부적절한 사례가 드러나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4일 중앙일보 보도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문을 공개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사진 KISTEP 캡처]

지난 4일 중앙일보 보도 이후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문을 공개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사진 KISTEP 캡처]

공공기관 직원들이 각종 수당을 부당하게 받은 경우도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은 지난해 초과근무 시간을 허위로 올렸다가 내부 감사에서 들통이 났다. 광주과학기술진흥원 직원들도 부당한 시간외수당을 받다가 적발됐다. 이곳에선 3년 전 직원들의 출퇴근을 확인하는 지문인식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도로공사에선 근무시간에 업무용 차량을 타고 테마파크 등에 다녀온 사례도 있었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선 명예퇴직자나 정년퇴직자에게 해외여행 비용을 지원한 게 문제가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B씨는 “다른 사람이 허위로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다고 내 월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낸 세금이란 점에서 부당한 수당의 수령을 묵과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일하는 C씨는 “식사비를 실제보다 초과해 결제하고 나중에 잔액을 현금으로 받아 가로채는 상사를 본 적이 있다”며 “한 번만 더 그러면 실명을 폭로하겠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에서 표출된 민지세대의 요구 내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민간 기업에서 표출된 민지세대의 요구 내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30대 공민지들은 공공기관 특유의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한다. 한 전력공기업에서 조직·인력 관리 업무를 맡았던 E씨는 지난해 회사에서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 회사 감사전략부의 징계 요구서에 따르면 D씨는 휴가 중인 부하 직원에게 업무 처리를 지시했다. 거친 표현의 문자메시지를 부하 직원에게 보낸 것도 문제가 됐다. E씨는 소속 부서원에게 자신을 집으로 초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취업·승진 문제는 공민지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선 콜센터 직원 16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비공개로 논의된다는 점에서 20~30대 직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선 비정규직 보안요원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사내 갈등이 심각해지며 ‘인국공 사태’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지난 3월에는 금융감독원에서 공민지들의 항의가 내부 게시판을 달궜다. 과거 채용 비리와 관련해 내부 징계를 받았던 간부들이 정기인사에서 승진했다는 점이 일부 직원들의 반발을 불렀다. 2014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금감원이 내부적으로 정한 승진 제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인사규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MZ세대에게 민감한 채용 비리 문제와 관련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졌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는 “MZ세대의 지적을 공공부문의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신구세대 간 조율을 통해 조직의 안정성을 이루는 것도 숙제”라고 말했다.

문희철 산업2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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