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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공연 없는 데뷔 60년, 하춘화 “65주년 때 더 잘할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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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가수 하춘화는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그런지 이 나이에 벌써 60주년을 맞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하춘화는 "워낙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그런지 이 나이에 벌써 60주년을 맞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공연하다가 사고 난 적은 종종 있었어요. 1972년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화재도 있었고, 77년 이리역 폭발사고도 있었으니까. 91년에 이미 공연 8500회를 해서 기네스북에 올랐으니 별의별 일이 다 있었죠. 그런데 지금처럼 1년 반 동안 공연을 못 한 적은 없었어요. 무대 위에서 하도 땀을 흘리니까 항상 등이 곪아있고 몸이 성한 데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너무 멀쩡해요. 뭔가 빠진 것처럼 삶이 허전하기도 하고.”

6세부터 가수활동, 앨범 140여장 #“세종문화회관 화재, 이리역 폭발… #별일 다 겪었어도 이런 적 처음 #몸은 멀쩡한데 뭔가 빠진 듯 허전”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은 가수 하춘화(66)의 소회는 담담했다. 1961년 여섯 살에 데뷔해 60년간 노래했지만 정작 60주년에 가장 무대에 적게 오를 줄은 미처 몰랐다. 2018년 연말 일찌감치 60주년 기념 음반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를 내고 올 1월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공연을 준비하던 터라 더욱 허탈하다고 했다. 3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대관을 11월로 미뤄도 봤는데 아무래도 올해는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단위로 데뷔 기념 공연을 열어온 그로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인생 계획이 틀어진 셈이다.

60년 동안 발표한 앨범만 140여 장에 달한다. “앨범을 다 가지고 올 수 없어서 앨범 재킷 사진을 들고 왔다”며 펼쳐 보였다.

60년 동안 발표한 앨범만 140여 장에 달한다. “앨범을 다 가지고 올 수 없어서 앨범 재킷 사진을 들고 왔다”며 펼쳐 보였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그의 일상은 변함이 없다. 공연에서 선보이기 위해 준비했던 피아노 연습도 계속하고 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 중에 제가 유일하게 안 들은 게 피아노 배우란 얘기였어요.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닌데 노력보다 실력이 너무 더디게 늘더라고요. 이번 60주년 공연을 위해서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 싶어서 3~4년 전에 다시 시작했는데 재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가 돼서 그런가. 더 열심히 하게 돼요. 공연에서도 한두 곡 치고 마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연결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하춘화의 데뷔 60주년 기념 앨범.

하춘화의 데뷔 60주년 기념 앨범.

아버지와 유독 각별했던 그는 “전국 방방곡곡 아버지의 발자취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어디로 공연을 가든 늘 동행했거든요. 지방마다 같이 간 식당이며 찻집이 한가득 이에요. 그래서 더 이별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활동은 아버지와 쌓은 추억 속에서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여섯 살 때 하춘화를 동아예술학원으로 데려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버지는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동안 발표한 앨범을 다 들고 올 수가 없어서 사진으로 가져 왔다”는 140여 장의 앨범 재킷 사진 역시 아버지가 일일이 코팅해서 만든 것이다.

2019년 10월 고향인 전남 영암에 개관한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 역시 아버지와 함께 오랫동안 준비한 작업이다. 지난 60여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하춘화 전시관은 물론 트로트 10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상설 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3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주 2~3회 공연 계획도 준비해 뒀지만 코로나19로 전부 무산됐다. 주현미·설운도·현숙 등이 참석해 성대하게 치른 개관 공연을 끝으로 기약 없는 동면에 들어갔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지금은 아카데미 출범을 준비 중이에요. 이론과 실기는 물론 인성 교육까지 커버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짜려고요. 스튜디오와 공연장도 있으니 앨범 녹음부터 공연까지 전부 가능하죠. 나이 제한도 엄격하게 두지 않으려고요. 마이클 잭슨도 다섯 살 때부터 노래했고, 요즘은 마흔 넘어서 시작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K팝 열풍이 이렇게 대단한데 우리 전통가요도 메카 하나쯤은 있어야죠.”

여섯 살에 데뷔해 “무슨 애가 동요는 안 부르고 트로트를 부르냐”며 눈총을 받았던 그는 TV조선 ‘미스터트롯’ ‘미스트롯2’를 통해 데뷔한 정동원(14)과 김태연(9) 등 어린 친구들의 활약이 부럽다고 했다. “지금처럼 경연 프로그램도 많고 배울 곳도 많았으면 나도 이것저것 더 해봤을 텐데 싶더라고요. 그때는 유명 작곡가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다만 (동원이와 태연에게) 노래한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 줬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롱런할 수 있다고. 재능있는 친구들이 이상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주변 어른들이 잘 이끌어줘야 해요.”

내년에 발표할 새 앨범도 준비 중이다. “벌써 1~2곡 정도는 골라뒀어요. 기존 히트곡도 있지만 신곡도 있어야 하잖아요. 요즘은 트로트가 유행해서 그런지 ‘정에울고 님에울고’(2002)처럼 예전에 발표한 곡이 뒤늦게 역주행하기도 하더라고요.” ‘마산항엔 비가 내린다’ 등에 직접 가사를 붙인 그는 “다음엔 작곡도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연을 못 한 것까지 65주년 공연 땐 더 잘해야죠. 세상은 바뀌고 눈높이도 높아지니 저도 새로운 걸 보여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목소리가 나오는 날까지 노래할 수 있다면 가수로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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