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한글 고체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일중 탄생 100주년 특별전

중앙일보

입력 2021.06.08 17:37

업데이트 2021.06.08 18:57

 김충현 (1921~2006), 용비어천가, ( 龍飛御天歌 )〉_33x167cm_ 종이에 먹, 196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김충현 (1921~2006), 용비어천가, ( 龍飛御天歌 )〉_33x167cm_ 종이에 먹, 196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김충현, 서산만조 (西山晩眺 ), 56x140cm, 16.5x127.5cm, 종이에 먹, 1979,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김충현, 서산만조 (西山晩眺 ), 56x140cm, 16.5x127.5cm, 종이에 먹, 1979,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소장. [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20세기 한국 서단의 거목'이라는 타이틀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필, 이른바 '국필(國筆)'로 불린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은 전국 곳곳의 중요한 현판과 묘비의 비문 등에 자신의 글씨를 남겼다. 경복궁 건춘문, 유관순 기념비, 이충무공 한산도 제승당비, 한강대교 표석, 사직단 현판, 김소월 시비 등이 모두 그의 글씨로 쓰였다. 글씨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던 여정은 그의 독보적인 글씨체인 '일중체(一中體)'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서울 백악미술관 150점 전시
서체 혼융으로 독보적 '일중체'

김충현 탄생 100주년 특별전 '一中, 시대의 중심에서'가 8일 서울 관훈동 백악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일중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김재년)가 마련한 전시로 글씨와 탁본, 서첩 등 자료 150점을 통해 일중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1934년 당시 13세였던 일중이 집안에 보관된 선대의 친필 간찰과 시고 등을 모아서 장첩한 책자부터 1938년 일중이 17세에 쓴 한글작품 등 드물고 귀한 자료들이 즐비한 전시장은 마치 박물관의 유물전을 방불케한다.

12세때 안진경체와 궁체를 익힌 일중은 동생인 여초(如初) 김응현(1927~2007)과 함께 20세기 한국 서예를 이끈 양대산맥이었다. 1942년 『우리 글씨 쓰는 법』을 펴냈고 궁체,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을 연구해 '한글 고체(古體)'를 창안했다. 한문 서예에선 전(篆), 예(隸), 해(楷), 행(行), 초(草) 각 서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구사했지만 그는 늘 '국한문서예의 통합'을 꿈꿨다. 특히 한글 고체는 『훈민정음』『용비어천가』등의 고판본에서 착안한 서체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로 김충현이 창안한 용어다. 한글 고체를 통해 그는 고판본이 하나의 서체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후대에 열어줬다.

전시는 일중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가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한글과 한자 서예 두루 능통했던 드문 작가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는 "일생에 걸친 일중의 서예 궤적은 한글과 한문을 오가며 발전해간 과정"으로 요약했다.

김현일 백악미술관장은 "일중은 10대에 전조선남여학생작품전에 한글 궁체작품을 출품하며 한문 해서 작품도 함께 출품했다"면서 "국한문서예에 대한 균형 잡힌 관심은 청년기부터 김충현의 서예를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선 김충현의 초창기 한글 고체 작품 '용비어천가'(1960)도 볼 수 있다. 그의 한글 고체는 고판본 자형에 전·예서의 필획을 가미하고 한글 가사와 한시 번역을 나란히 배치한 것도 특징이다. 김 관장은 "해방 직후부터 교단에서 국문학을 가르친 김충현은 한글과 한문이 어우러져야 작품의 온전한 감상이 가능하다고 여겼다"며 "'용비어천가'야말로 한글 고체와 한문 행서의 조화로 김충현의 뜻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국한문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시기 별로 일중이 서예에 눈을 떠 한글 서예를 발전시키고 일중체를 확립한 과정과 다양한 제호(題號)와 비문(碑文) 작품, 그리고 그를 둘러싼 문화인들을 세밀하게 비춘다.

일중이 한국 문화에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바로 독보적인 자신만의 글씨체 '일중체'의 확립이다. 이번 전시에선 1970년대 말 '일중체'를 대표하는 작품도 공개한다.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1328~1396) 의 시『서대행』을 12폭 병풍에 담은 대작이다. 대형 화폭에 자연스러운 획과 넉넉한 결구로 구성된 이 작품은 김충현 예서의 완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김충연, 삼연시( 三淵詩), 80x35cm_종이에 먹,1987,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소장.[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김충연, 삼연시( 三淵詩), 80x35cm_종이에 먹,1987, 일중선생기념사업회 소장.[사진 일중선생기념사업회]

한편 삼연시(三淵詩)( 1987) 는 1980년대 김충현 서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정점을 찍는다. 각종 서체를 한 화면에 구성한 작품으로 그가 그린 현대 서예의 청사진이 어떤 것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김 관장은 "다양한 서체를 익히고 법의 구애 없이 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작품을 앞으로 서예가 추구할 방향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 박래현, 천경자, 정종여, 김은호 등이 그린 표지에 김충현의 제호가 더해진 책들도 전시에 나왔다. 김현일 관장은 "일중(一中)의 행보와 궤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심(中心)을 잘 잡고 살아가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면서 "일중은 자신의 호처럼 서예 하나만을 충심(忠心)으로 섬기며 꿋꿋하게 나아간 분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7월 6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