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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앗아간 침묵의 췌장암…20년째 생존율 겨우 1.9%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가 8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상철 전 감독은 지난 2019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해 왔고 7일 별세했다. 뉴스1

고(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의 빈소가 8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유상철 전 감독은 지난 2019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에 전념해 왔고 7일 별세했다. 뉴스1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으로 7일 별세했다.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지 1년 8개월 만이다. 향년 50세. 췌장암은 65세 이상 노인에게 빈발하는데, 유 전 감독은 드물게 이른 나이에 걸려 유명을 달리했다.

유상철 전 감독 사망으로 본 췌장암 실태 #대부분 암 발생 줄고 생존율 오르지만 #췌장암만 발생·사망 동시에 계속 늘어 #증세 없어 조기진단 어렵고 좋은 약 없어 #"50대 췌장암 사망 매우 드물어, 안타깝다"

췌장암은 가장 독한 암으로 불린다. 4기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성식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장은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으면 절반이 9개월을 못 넘긴다. 평균 기대수명이 채 1년이 안 된다"고 말한다. 유 전 감독은 항암치료, 축구에 대한 열정, 긍정적 사고, 강한 의지 등으로 평균기간을 더 넘긴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암 치료기술이 발전하고 좋은 항암제가 많이 나오면서 거의 모든 암의 치료성적이 올라간다. 하지만 췌장암은 지난 20년간 반 발짝 정도 앞으로 나갔을 뿐이다. 초기 증세가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그래서 '침묵의 암'으로 볼 수 있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모든 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993~1995년 42.9%에서 2018년 70.3%로 올랐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위암은 44%에서 77%로 올랐다.

치료가 어렵다는 폐암도 12.5%→32.4%, 간암도 11.8%→37%로 올랐다. 하지만 췌장암은 10.6%에서 2010년 8.5%로 떨어졌다가 2018년 12.6%로 올랐다.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5년 상대생존율은 성·연령 등 같은 조건의 일반인과 비교해 암환자가 5년 생존하는 비율을 말한다.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퍼진 원격전이(4기) 상태에서 발견된 췌장암의 5년 상대생존율은 1.9%에 불과하다. 모든 암은 23.3%, 위암 5.9%, 갑상샘 60.5%, 폐 8.9%, 대장 19.5%, 유방암 40.2%, 간암 2.8%이다. 한국인의 10대 암 중 꼴찌다.

위암 같은 대부분의 암은 발생률이 줄고 있다. 연령 표준화 발생률(인구 조건이 같다고 가정)을 보면 위암은 99년 45.5%에서 2018년 31.6%로 떨어졌다. 하지만 췌장암은 5.7%에서 7.7%로 증가했다. 절대 환자 수는 같은 기간 위암은 2만863명에서 2만9279명으로, 췌장암은 2603명에서 7611명으로 늘었다. 증가율이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위암은 2011년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췌장암은 20년 전부터 매년 증가하고 있다.

주요 암 5년 상대생존율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요 암 5년 상대생존율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2018년 췌장암 환자가 7611명 발생했고, 그 해 6306명이 숨졌다. 2019년에는 6396명 숨졌다. 2019년 췌장암 사망자 중 50대는 771명으로 12%에 불과하다. 한성식 센터장은 "췌장암은 65세 이후 고령층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노인 암이며 유 전 감독처럼 40대에 발병해 50대에 숨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립암센터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은 암 발생 8위이지만 사망은 5위를 차지한다. 암센터는 "매일 20명 이상 췌장암 환자가 발생하고, 매일 18명 넘게 사망한다"고 설명했다.

위암이나 대장암은 내시경 등의 검진을 활용해 1기 같은 조기에 발견하는 비율이 올라간다.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되는 비율이 높다. 간암은 간염 백신 접종이 늘면서 발생률이 감소한다. 또 종양 표지자나 초음파로 조기에 발견할 수 있어 뚜렷하게 사망률이 줄어드는 추세다.

한성식 센터장에게 췌장암의 원인과 대책을 물었다.

한성식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장

한성식 국립암센터 간담도췌장암센터장

왜 이리 독한가.
환자 발생률이 지속해서높아지는 데다아직 이렇다 할 조기진단 프로그램이 없다. 초기에 암 진행 속도가 빠르다. 진단되면암세포가 번진 3기 이상이 80%이다. 3, 4기는 수술하지 못한다. 수술하는 게 치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데 그럴 수 있는 환자가 20%에 불과하다. 
항암제 치료를 하면 되지 않나.
효과적인 약물이 별로 없다. 다른 암과 다른 점이다. 면역항암제 같은 혁신적인 약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는 치료 성적이 좋아진다는데.
그렇긴 하다. 최근 5년 새 성적이 조금 나아졌다. 항암제를 써서 암 크기를 줄인 뒤 수술할 수 있는 환자가 조금씩 늘어난다. 
조기에 알아챌 방법이 없나.
특이한 조기 증상이 별로 없다. 복통이 있는데, 복통의 원인이 수도 없이 많으니 췌장암을 의심해서 검사하기가 어렵다. 체중 감소, 황달 등이 주요 증세인데, 이런 게 나타나면 70~80%가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다.
건강검진에서 알 수 없나.
우연히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복부 CT(컴퓨터단층촬영)를 활용하면 췌장 전체를 볼 수 있어 암을 잡아낼 수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지 않다. 대신 복부 초음파를 하는데, 이걸로는 췌장의 일부만 볼 수 있다. 
복부CT를 검진 항목에 넣으면 되지 않나.
그걸로 췌장암을 찾아내는 비율이 너무 낮다.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CT로 인한 방사선 노출 우려도 있다. 고위험군만 찍으면 되는데, 어떤 사람을 고위험군으로 정할지 쉽지 않다. 
췌장암의 원인이 뭔가.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을 유발하는 게 분명하다. 췌장암은 이렇게 딱 찍을 수 있는 원인이 없다. 다만 흡연이 위험인자인 점은 분명하다. 오래된 당뇨, 만성췌장염, 고칼로리·고지방 식습관도 위험인자이다. 비만이면 위험도가 올라간다.   
예방하려면. 
식상한 주문이겠지만 금연, 건강식,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 운동이 중요하다.

국립암센터는 최근 5년간 췌장암 치료 성적이 약간 올랐지만,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본다. 암세포가 췌장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에는 생존율 향상이 두드러진다.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발전하면서 수술할 수 있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췌장암 진단 후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가 수술이나 항암 화학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은 환자보다 5년 생존율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최근 들어 수술받은 환자의 생존율 향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적극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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