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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빠의 증류소를 부활시킨 아들의 위스키 열정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3)  

누군가에게는 재산이, 누군가에게는 빚이 상속된다. 재산은 상속권을 갖기 위해 다투고, 빚은 상속권을 버리기 위해 다툰다. 물리적으로는 받아들이는 방법이 전혀 다른 셈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식의 운명. 둘 다 자기 부모가 살아온 궤적이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바에서 몇 분 걸어가면 작은 시장이 하나 있다. 어릴 적부터 자주 다녔던 곳인데, 요즘 들어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띈다. 바로 ‘세대교체’. 내가 어릴 적 40~50대였던 시장 상인이 어느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 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엔 젊은 사람이 메워 나갔다. 30대가 많지만, 요즘에는 20대로 보이는 청년도 꽤 있다.

젊은 상인들이 우리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옛날 상인에게 24시간 감자탕집이 유일한 선택이었다면, 젊은 상인은 새로운 가게를 찾는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하느라 피곤에 젖은 그들에게 위스키 한 잔은 다음 날을 위한 피로회복제였다.

“그래도 이 낙에 살아요.”

몇 달 전부터 우리 가게를 찾는 그 총각은 어릴적 생선가게를 하시는 부모님을 창피해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사진 pixabay]

몇 달 전부터 우리 가게를 찾는 그 총각은 어릴적 생선가게를 하시는 부모님을 창피해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사진 pixabay]

몇 달 전부터 우리 가게를 찾는 생선 가게 총각.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공무원 준비를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부모님 가게를 잇기로 했다. 그가 노량진 고시원에서 희미하게 맡아왔던 생선 냄새는 현실로 다가왔다. 매일같이 비린내를 맡아가며 부모님을 도왔고, 장화 사이에 스며든 비린 물은 발가락 사이의 살을 갉아먹었다.

“어릴 적에는요, 생선 가게 하는 부모님이 창피했어요. 등하굣길에 늘 시장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거든요. 저보다 먼저 시장에 나가 일하시는 부모님을 늘 외면했어요. 친구들이 함께였거든요. 그게 습관이 되니까 부모님도 저를 쳐다보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일을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고된 일을 하다가 귀여운 자식새끼 얼굴 한 번 보면 얼마나 힘이 났을까 하고요. 제가 어리석었죠.”

“어릴 땐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집을 나설 때부터 눈치를 봤어요. 집이 워낙 허름해 그 집에서 나온다는 걸 친구들한테 들키기 싫었거든요.”

우리 가게에 오는 그의 머리카락은 늘 젖어있다. 조금이라도 바에 피해를 줄까, 생선 냄새를 지우려고 집에서 샤워를 하고 오는 까닭이다.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정말 힘들어요. 물론, 세상 살아가는 데 쉬운 일은 없겠지만 왜 하필 생선장사인가 싶어요. 제가 못나서 선택한 길이고,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먹고 살아왔지만, 좀 더 좋은 일을 물려받을 순 없었을까 하고요.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들면 제가 다 맡아서 해야 하는 데 자신도 없어요. 겉으로는 아무 내색 안 하고 있지만, 이게 진짜 속마음이죠. 죄송합니다. 너무 어린애 투정 같죠? 여기만 오면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버리고 마네요.”

“바는 그런 곳입니다.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타인에게 솔직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치로즈 몰트 위스키. [사진 김대영]

이치로즈 몰트 위스키. [사진 김대영]

백바에서 다소 투박한 모양의 병을 하나 꺼내 한 잔을 그에게 건넨다. 병에 새겨진 ‘THE FIRST’라는 영어 문구가 눈에 띈다.

“이치로즈 몰트 치치부 ‘THE FIRST’입니다. 2008년 일본에 설립된 치치부 증류소에서 증류한 원액을 3년간 버번 배럴에서 숙성했습니다. 그렇게 숙성된 31개의 캐스크를 배팅해 7400병의 위스키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치치부 증류소의 첫 위스키죠.”

“이치로즈 몰트. 처음 보는 위스키네요.”

그가 잔을 들어 위스키를 홀짝이고, 잔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입 안에서 위스키를 굴리며 맛을 보고 잠시의 여운을 즐긴다.

“이거, 3년 숙성이라고 하셨죠? 그런데 상당히 맛이 좋네요. 처음 발매한 위스키가 이 정도라면 지금 출시하는 위스키는 훨씬 낫겠어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방금 드신 위스키 맛이 기초가 되죠. 사실 치치부 증류소를 세운 아쿠토 이치로는 부모의 대를 이어 위스키를 만들고 있습니다.”

“네? 아까 2008년에 증류소를 세웠다고 하셨는데, 대를 이어 위스키를 만든다면 부모님 증류소를 이어받는 거 아닌가요?”

하뉴 증류소 위스키로 만든 이치로즈 몰트 카드 시리즈 '조커'. [사진 김대영]

하뉴 증류소 위스키로 만든 이치로즈 몰트 카드 시리즈 '조커'. [사진 김대영]

“이치로 부모는 하뉴 증류소를 운영했었죠. 1600년대부터 사케를 만들던 곳이었는데, 1980년대와 90년대, 일본 싱글몰트 위스키 붐을 타고 위스키를 제조해 판매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 생산을 멈췄고, 2004년에는 폐쇄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치로의 위스키에 대한 열정까지 폐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친척들을 설득해 위스키 증류소를 세울 부지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은행을 찾아가 자신의 위스키에 대한 열정을 어필했죠. 물론, 여기에는 부모의 위스키도 한몫했습니다. 하뉴 증류소에서 만든 좋은 위스키를 ‘이치로즈 몰트’라는 브랜드로 팔았습니다. 국제적으로 맛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아주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2008년에 세운 신생 증류소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죠. 하뉴 위스키의 저력을 체험한 위스키 팬 덕분입니다. 이치로는 비록 부모로부터 증류소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좋은 위스키를 물려받아 다시 일어난 셈이죠. 그리고 이제는 부모의 위스키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스키는 그런 매력이 있군요. 증류소가 망해도 캐스크는 남아 숙성을 이어가고, 결국에는 맛있는 위스키가 되어 사라진 증류소의 부활까지 이끌어낸다. 멋진 이야기지만, 생선 가게를 물려받을 저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아요. 생선은 매일 팔지 못하면 버려야 하잖아요."

이치로즈 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기. [사진 김대영]

이치로즈 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증류기. [사진 김대영]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옛날부터 손님 가게 단골이 된 건 생선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친절함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제 생일까지 기억해서 그 날 나온 생선 중 가장 신선한 걸 챙겨주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동네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신 거죠. 그리고 두 분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저희 가족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이 동네에 얼마나 많은 가족이 부모님의 친절함과 밝은 미소를 기억하고 있을까요? 부모님의 친절함과 미소를 벤치마킹해보세요. 생각보다 팬의 힘은 대단해 고난이 닥쳐도 재기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외면했던 부모님의 얼굴이 얼마나 빛났었는지도 알게 될 거고요.”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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