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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m서 극단충동 사라졌다" 아찔한 인증샷 찍던 男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들. 수천명의 팔로워에게 인기를 끌었던 그의 계정은 그가 미국 전역의 지역 사법당국으로부터 기소를 당한 이후 2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실명과 가명을 섞어서 공개하고 있다. [아이삭 인스타그램]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들. 수천명의 팔로워에게 인기를 끌었던 그의 계정은 그가 미국 전역의 지역 사법당국으로부터 기소를 당한 이후 2만명 이상으로 불어났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실명과 가명을 섞어서 공개하고 있다. [아이삭 인스타그램]

400피트(약 122m) 높이의 현수교 꼭대기. 이곳에 올라 도시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던 한 20대 남성은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전직 미 육군 공수부대였던 그는 군에서 생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충동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찔한 높이의 구조물 꼭대기에 서서 사진을 찍을 때면 이런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미국 전역의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사진을 찍어 가명으로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사진은 인기를 끌었지만 그는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다. 전직 미 육군 공수부대원 아이삭 라이트(25)의 얘기다.

7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더타임스는 로스앤젤레스(LA)발 기사에서 라이트가 현재 미국 여러 주(州)에서 고소·고발을 당해 감옥에 갈 상황에 부닥쳤다고 전했다. 기소된 혐의를 합하면 최대 25년형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보통 (이런 부류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건조물 침입은 경범죄로 취급되지만, 그는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 출신에 PTSD 장애까지 진단받은 전력 탓에 당국으로부터 '위험인물'로 여겨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군에서 6년간 근무하며 주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3월 낙하산 강하 훈련 도중 다리를 심하게 다쳐 명예제대해야 했다. 하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재향 군인 병원에서 받기로 한 치료도 받지 못했다. 연금으로 겨우 생활하며 방황하던 그는 PTSD 증세가 더 심해졌고 자살 충동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 [아이삭 인스타그램]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 [아이삭 인스타그램]

그러다 지난해 가을 한 현수교에 오르는 경험을 한 이후 그는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경관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때면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어두운 생각과 충동이 가라앉았다. 사진 결과물도 마음에 들었다. 사진작가로 전직할 생각마저 들었다.

이후 그는 텍사스부터 펜실베이니아주까지 각 지역의 대표적 명소인 건물의 꼭대기에 올라가 눈길을 끄는 사진을 찍었다. '도시 탐험가'라 불리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에도 합류했다. 사진은 SNS에서 인기를 끌었다. 수천 명의 팔로워가 그를 응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재향군인의 날'에 뉴욕 맨해튼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만큼 높은 위치의 철골 구조물에 서 있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그러면서 "카메라가 나의 생명을 구했다"며 "내 인생은 무너졌지만 (카메라가) 인생의 모든 아름다운 것을 보여줬다"고 썼다.

지난해 11월 뉴욕 맨해튼의 한 철골 구조물 꼭대기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아이삭. [아이삭 인스타그램]

지난해 11월 뉴욕 맨해튼의 한 철골 구조물 꼭대기에 올라가 사진을 찍은 아이삭. [아이삭 인스타그램]

문제는 그의 이런 행동이 모두 불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건물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야간에 건물 안에 무단 침입했다.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대들보를 가로 질렀다. 고층 빌딩은 물론 경기장, 다리, 건설 크레인에도 올랐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공구를 동원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애리조나주(州) 경찰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폐쇄하고 헬기까지 동원했다. 경찰 20여명이 소총을 들고 그를 쫓았다.

덜미를 잡힌 것은 그의 고향인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에서였다.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고층 건물에 오르던 날 그는 폐쇄회로(CC)TV를 지켜보던 건물 경비원에게 발각됐다. 경찰은 체포 영장을 발부받아 그를 구금했다. 이후 그의 SNS 사진과 영상을 본 전국의 지역 경찰이 차례로 나서고 지역 사법당국이 그를 기소했다.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들. [아이삭 인스타그램]

아이삭 라이트가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한 사진들. [아이삭 인스타그램]

그는 4일 보도된 NYT와의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늘어나는 형사 사건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고, 출구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적인 모든 것이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이 한 행동은 "피해자가 없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건을 해결한 뒤 다시 높은 곳에 올라가 세상에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싶다"며 "아마 다른 나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를 처음 체포한 신시내티 경찰 감독 도그 비스먼은 "그는 옥상에 도달하기 위해 문과 보안 카메라를 손상했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면서 "그가 저지른 범죄는 정교하고 규모가 크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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