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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좀 하라'는 이재명···'해봐서 안다'는 MB 떠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5일 자신의 기본소득 정책을 비판하는 네티즌에게 “이해능력을 더 키워 보라”는 글을 썼다. 이 지사가 “복지 후진국에선 복지적 경제정책인 기본소득이 가능하고 필요하다”라고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한 네티즌이 “하도 이상하게 (전문가) 인용을 하시니 이제 뭔 글을 써도 믿질 못하겠다”라고 댓글을 달자, 그 밑에 다시 댓글로 쓴 글이었다.

지난 5일 자신의 기본 소득 정책을 비판한 네티즌에게 ″이해 능력을 키우라″고 직접 답변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지난 5일 자신의 기본 소득 정책을 비판한 네티즌에게 ″이해 능력을 키우라″고 직접 답변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캡처

최근 이 지사는 노벨경제학상 공동수상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ㆍ에스터 듀플로 교수의 책을 근거로 기본소득을 옹호했는데, “잘못된 인용이자 왜곡”(유승민 전 의원)이란 비판을 야권은 물론 여권(정세균 전 국무총리)에서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네티즌이 “이제 믿지를 못하겠다”고 가세하자, 다소 날이 선 반응을 보인 것이다.

대통령ㆍ정부에도 틈만 나면 “공부 좀 하라”

현역 지방단체장이자 유력 대선 주자가 시민의 이해력을 문제 삼는 건 낯선 모습이다. 그래서 해당 댓글엔 다시 “본인 말에 토 달면 그냥 머리 나쁜 건가요”, “국민이 잘못했군요”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하지만 이 지사의 화법을 톺아보면, 상대방의 지적ㆍ교육 수준을 돌직구로 지적하는 일이 꽤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그는 “박 대통령은 무능하고 무식”(2016년 11월), “이정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헌법 공부 좀 하라”(2016년 9월)고 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그의 역점 정책 중 하나인 지역 화폐의 효용성이 낮다는 보고서를 낸 국책연구기관(조세재정연구원)에 “공부 좀 하라”(지난해 12월)고 했다. 연말·연초엔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두고 이견(선별 지급)을 낸 기획재정부에 “변화된 세상에 맞춰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지난 1월)고 했다.

지난 4월엔 ‘재산비례 벌금제’ 정책을 두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과 논쟁을 벌이다,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윤희숙)에게 한글 독해 좀 가르치라”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MB “내가 해봐서 아는데”…자수성가 정치인의 공통점?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지사가 자수성가 정치인의 도그마에 빠진 것 아니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찢어지게 가난해 공부 못하던 소년 이재명”(5월 7일 페이스북), “공부만이 살길이었다”(2017년 인터뷰) 등
‘가난한 소년공에서 공부로 성공한 정치인’은 이 지사의 대표 이미지이고, 이 지사 스스로가 이 점을 강조해왔다.

채 교수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 성공한 자수성가 정치인들은, 자신의 성취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슷한 사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자기 과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해봤거나 학습한 기준에 대한 믿음이 크고, 혹시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2012년 1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학생 청년 창업 및 벤처기업 성과 보고대회'에서 창업과 도전정신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2년 11월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학생 청년 창업 및 벤처기업 성과 보고대회'에서 창업과 도전정신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채 교수가 이 지사와 함께 적시한 이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어록 중 하나가 “내가 해봐서 아는데”다. 그는 임기 내내 “나도 창업했던 소상공인 선배라 아는데”(2009년 2월), “내가 기업을 운영해봐서 아는데”(2009년 5월), “나도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2010년 4월), “내가 장사를 해봐서 아는데”(2011년 2월) 등의 말을 자주 했다.

이런 자기 확신은 이 전 대통령 추진력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가끔씩 ‘불통 대통령’이란 비판을 받게 된 배경으로도 꼽힌다. 당시 야당에선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말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귀를 열어 국민의 애타는 한숨 소리를 들어달라”(2011년 6월,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목소리가 나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오인용 논란도 독학의 맹점”

이번 바네르지ㆍ듀플로 교수 오인용 논란에도 이런 특성이 반영됐다고 채 교수는 분석했다. 채 교수는 “독학으로 성과를 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연구를 잘 인정하지 않는데, 잘 모르는 분야라면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도 “이 지사가 유승민ㆍ윤희숙 등 경제 전문가들과 싸우기 위해, 세계적 경제학 권위자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주장을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지사는 “바네르지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고, 유 전 의원은 중진 국회의원”(4일 페이스북)이라며 바네르지 교수와 유 전 의원의 권위를 비교하는 듯한 표현도 썼다.

이재명_윤희숙논쟁

이재명_윤희숙논쟁

최진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자수성가로 이룬 성취의 양면성을 잘 제어해야 한다”며 “이 전 대통령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선 자기 확신을 갖고 일 처리를 시원시원하게 하는 정치인이 인기가 높지만, 너무 지나치면 독불장군의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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