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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회의 앞두고 뒤집힌 판결…이제 ‘외교의 시간’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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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일 청와대에서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법원이 이날 한·일 간 악순환 고리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였던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뒤집으면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실마리를 잡게 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7일 청와대에서 제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법원이 이날 한·일 간 악순환 고리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였던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뒤집으면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실마리를 잡게 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법원이 한·일 관계에 던졌던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스스로 멈췄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일 간 악순환 고리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였던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하급심에서 뒤집었다.

‘사법부 존중’ 입장 보여온 문 정부 #한·일관계 풀 마지막 기회 열린 셈 #런던서 양국 정상 만남 긍정신호 #일본 “한국 구체적 대안 주시할 것”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가 7일 일본 전범 기업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사실상 마지막 실마리를 잡게 됐다. 법원이 오는 10일로 예정했던 선고기일을 앞당겨 선고함에 따라 11~13일 영국 런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만나는 구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동시에 일본과의 화해와 징용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그간 정부는 사법부 판단 존중과 일본과의 관계개선 노력이 상충하는 구조적 모순에 빠져 있었다.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면 2018년 대법원 판단에 따라 일본 전범 기업 자산 현금화 등 강제집행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게 순리인데, 이럴 경우 한·일 관계는 회복 불가의 지경으로 떨어질 게 불 보듯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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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피해자들의 소송을 각하하면서도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거나 포기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손해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취지다. 관건은 한·일 관계 개선은 물론 고령의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을 의미 있게 지원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와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간 일본은 한국 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사법부에 과거사 문제를 미뤄서 이 지경이 됐다는 불만이 있었는데, 이번 판결을 활용한다면 정부가 행정부나 입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신호를 발신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라며 “이제 과거사 문제를 풀려는 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판결 직후 “정부는 앞으로도 사법 판결과 피해자 권리를 존중하고,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양국 정부와 모든 당사자가 수용 가능한 합리적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데 대해 열린 입장으로 일본 측과 관련 협의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7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계속해서 동향을 주시하겠다”며 “양국 현안 해결을 위해 한국이 책임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현재 한·일 관계는 징용공(강제 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 등에 의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측의 구체적인 대안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한·일 간 청구권 문제는 협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으므로 이를 법적으로 행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해 왔다.

오쿠조노 히데키(奧薗秀樹)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한국이 변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일본만 ‘대화하지 않겠다’고 강경하게 나갈 경우 한·일 문제를 넘어 대미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압박 여부에 따라 일본 정부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이영희·윤설영 특파원,
유지혜·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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