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주식·부동산 세금에 정치권 입김…내년 대선 앞두고 흔들리는 조세정책

중앙일보

입력 2021.06.08 00:02

업데이트 2021.06.08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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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재인 정부 임기 막바지 조세정책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다. ‘코인개미’와 ‘동학개미’ 그리고 ‘부동산 벼락거지’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이 세제까지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다.

주식 양도세는 여당 압박에 번복
‘상위 2%에 종부세’ 개편안도 논란
“정치 수단으로 활용, 형평성 훼손”

당장 가상자산에 매겨질 세금이 정치권의 입김을 받고 있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 자산을 거래해 번 소득에 대해 세금을 매길 방침이다. 대부분의 신규 암호화폐 투자자가 20·30대 청년층인 가운데, 가상자산 과세 문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점해야 할 이슈’로 꼽힌다.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가 암호화폐 과세를 1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는 등 정치권에서 암호화폐 과세 시점을 미루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예정대로 과세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내년 1월이 임박하면 기존의 입장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식 관련 세제 등에서 정부가 정치권에 끌려다니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연출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재부는 주식 보유액 10억원을 기준으로 했던 주식 양도세 부과 요건(대주주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 여론을 등에 업은 여당의 압박 끝에 기존 방침을 번복했다. 2017년에 이미 국회와 정부가 합의한 내용인데도, 여당은 ‘국민의 세 부담을 덜겠다’는 포장으로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을 스스로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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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희미해지면 가계는 재테크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기업의 경영 계획도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는 특히 최근 들어 조세정책에 정치적 압력이 커지면서 조세 원칙의 일관성까지 붕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정책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조세 원칙인 효율성과 형평성, 경제 주체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 교수는 또 “국가가 국민의 돈인 세금을 아끼고 잘 쓴다는 공감대도 없는데, 수시로 세제에 손을 대니 납세자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정치적 계산에 따른 조세정책 수정은 계속 쏟아질 전망이다. 부동산 세금이 대표적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부동산 세제 개편안은 기존의 부동산 조세의 틀을 아예 뒤집는 수준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종합부동세를 공시가격 상위 2% 부동산 보유 인원에 대해 비율제로 매기는 내용의 개편안을 제시했다.

정부와 당내 반대 의견에 걸려 최종 방향을 결정하진 못했지만, 이번 개편안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특정인을 타깃으로 해 징벌적인 세금을 매기려는 여당의 의도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서 소외되거나, 부동산 세 부담이 커진 국민의 성난 민심을 상위 2% 부동산 보유자에게 돌리겠다는 여당의 속내를 노골화했다는 평가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종부세는 결국 부자들에게 징벌적으로 매기는 ‘부동산 부유세’ 형태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그러나 주택만으로 부유함을 설명할 수 없어 왜곡된 부유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이런 ‘세금 정치’ 행태에 대해 김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조세 저항을 만난 여당이 종전과는 반대로 세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면서 “세제 합리화, 선진화를 위한 정비 방안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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