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강제집행 안된다” 그 재판부, 대법 '징용 배상'도 반기

중앙일보

입력 2021.06.07 19:20

업데이트 2021.06.07 19:49

 강제징용 피해자 故 임정규씨의 아들인 임철호(84)씨와 장덕환 일제 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오른쪽)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마친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강제징용 피해자 故 임정규씨의 아들인 임철호(84)씨와 장덕환 일제 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오른쪽)이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마친뒤 이동하고 있다. [뉴스1]

7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각하한 재판부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뒤집으며 당시 결정을 비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위자료 청구권 인정은 국내법적 해석”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는 이날 판결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선고는 국내 최고 재판소의 판결이지만 단지 국내법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했다. 당시 전원합의 판결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징용의 불법성을 전제했는데, 이런 판단은 국내법적 해석이어서 국제사회에서는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어 재판부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국제법상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협정의 ‘불이행’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한 근거로 비엔나협약 제27조와 국제법상 금반언(禁反言)의 원칙을 들었다. 비엔나 협약 제27조는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에 대한 정당화의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금반언의 원칙이란 국가의 책임있는 기관이 특정 의사 표시나 행위를 한 경우 나중에 그와 모순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지난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10월 30일 김명수 대법원장(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즉 전원합의 판결이라는 국내법적 사정만으로는 국제법상 조약인 청구권 협정에 반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청구권 협정 체결 이후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취해온 행위와 발언을 종합하면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을 인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정부는 청구권 협정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법을 제정해왔다. 또 2009년 외교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공식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김양호 부장판사 3월엔 “위안부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 

이번 판결의 재판장인 김양호(51·사법연수원 27기) 부장판사는 올해 2월 법관 정기인사에서 민사34부 재판장이 됐다. 김 부장판사는 2001년 전주지법 판사로 임용된 뒤 2010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방문학자로 연수했고, 독일 민사소송의 하급심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지난 3월 김 부장판사는 전임 재판부가 국제법상 ‘국가면제’ 논리를 무릅쓰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승소 판결을 한 사건과 관련해 “소송비용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취지의 추가 결정을 내기도 했다. 올해 1월 전임 재판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소송 비용은 일본이 부담하라”는 주문을 함께 냈는데, 후임인 김 부장판사가 “일본 정부가 부담할 소송 비용은 없다”고 직권으로 이를 뒤집은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결정문에서도 비엔나 협약 제27조와 금반언의 원칙을 근거로 일본 정부에 대한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으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 논리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이번 강제징용 손배소 판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지난 3월 ‘위안부 결정문’의 논리가 이날 강제징용 판결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재판부는 이번 청구가 인용돼 확정되고, 강제집행으로 이어진다면 “일본은 중재절차와 국제사법재판소로 이 문제를 회부할 것이 명백하고, 대한민국이 패소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경우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이 국제 중재 또는 국제 재판의 대상이 되는 자체만으로도 사법 신뢰의 손상이 되고, 대한민국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어 한일 관계의 경색이 결국 한미동맹의 약화로 이어져 헌법상 가치가 침해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만약 국제 재판에서 패소할 경우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안보와 직결된 미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져 헌법상 안전보장을 훼손하고 사법 신뢰의 추락으로 헌법상 질서유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제한되더라도, 헌법상 국가 안전보장, 질서유지 등의 가치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취지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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