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손배소 패소···유족들 "한국 판사 맞느냐"

중앙일보

입력 2021.06.07 17:12

업데이트 2021.06.07 17:57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7일 오후 2시 3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장덕환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재판 시작 후 1분 만에 내려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각하 결정에 격분하면서다. 장 대표는 “재판 결과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울어야 하는지,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고 임정규 씨의 아들 임철호(가운데)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닛산화학 등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고 임정규 씨의 아들 임철호(가운데) 씨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일본제철 주식회사와 닛산화학 등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이 각하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2015년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1인당 1억원씩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각하했다.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심리 없이 재판을 끝냈다는 의미다. 소송 비용 또한 원고 측이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이날 재판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도 “이를 소송으로 행사하는 것은 제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청구권협정만으로 징용 피해자 개인의 정신적 위자료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는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피해자들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건 국제법을 존중해 제한돼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원고 측 법률대리인 강길 변호사는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기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서 말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원고는 심판 대상으로서 적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재판부가)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 재판부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라 항소할 것”이라며 “강제징용돼 임금도 못 받은 부당한 상태라 최소한 임금과 그에 해당하는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양국 관계도 이런 기초 위에서 재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 “한국 판사 맞느냐”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1심 선고에서 각하 판결을 받은 유족 임철호(왼쪽) 씨와 대일민간청구권 소송단 장덕환 대표가 공판이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소 의견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판결을 보기 위해 이날 법원에 참석했다는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임정규씨 아들 임철호(85)씨는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 나라가 독립돼 (배상을) 요청했는데 오늘 한심한 결과를 가져왔다”며 “한국 판사, 법원이 맞는 건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고 입을 열어 말할 수가 없다”고 울먹였다. 임씨에 따르면 임씨의 아버지는 일제 강제징용으로 나가사키에서 탄광 일을 하다 사망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법원이 선고일을 갑작스럽게 앞당긴 것에 대해서도 유족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애초 재판부는 오는 10일 이 사건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오전 돌연 기일을 앞당기겠다고 원고와 피고 양측에 통보했다. 장 대표는 “오늘 아침 9시 조금 넘어서 선고가 당겨졌다는 사실을 기자들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며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가 강제징용돼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6년간 탄광 일을 했다는 정영수(71)씨는 “한 시간 반 전에 선고 날짜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정부에서 달려왔는데 이러는 게 어디 있느냐”며 “우리는 일본 기업들로부터 돈을 못 받아서 달라고 한 건데 원고들이 재판비를 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