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어느 치매 노인의 ‘황홀한 시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76)  

“치매에 잘 걸리는 유전자가 따로 있나요?”
“뭘 먹어야 치매에 안 걸릴까요?”

주부들이 애용하는 커뮤니티엔 곧잘 이런 질문들이 등장한다. 주르르 달린 댓글엔 유전이다, 아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임이 분명하다는 말이 올라왔다. 갑론을박 이런저런 댓글을 주고받는 중에 어느 유저가 올린 글. “유전이고 음식이고 의미 없고 아무래도 오래 살면 생기는 게 치매 아닐까요?”

그러자 많은 댓글이 동조하고 나섰다. 말도 안 돼! 하지만 묘하게 설득되어버리는 상황이라니! 결국은 ‘장수’가 또 문제였을까?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은 ‘이러다 나도 100세까지 살면 어쩌지’였다.

치매노인과 가족의 시간을 다룬 소설 '황홀한 사람'의 장면.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치매노인과 가족의 시간을 다룬 소설 '황홀한 사람'의 장면.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시어머님의 장례를 치를 때였다. 장례식장 안내판엔 통상 고인과 상주들의 이름이 고인의 나이와 함께 적혀있기 마련이다. 당시 어머님은 90세, 다른 분들은 70후반에서 80대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조문객 대부분은 오래 사셨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올해 초, 지인의 장례식장에서 본 풍경은 사뭇 달랐다. 고인들의 나이는 대부분 96, 94, 98 등 아흔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나이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장수시대 백세시대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고령화 시대는 이미 빠르게 달려와 있었다.

이게 50년 전의 이야기라고?

얼마 전 아리요시 사와코의 『황홀한 시간』이라는 소설책을 읽었다. 제목만 보면 달콤한 로맨스 소설일까 싶지만 그건 아니다. 고령화로 인한 치매, 돌봄, 복지문제를 날카롭고 세심하게 파고들어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이다. 어느 날 치매라는 고약한 병에 걸린 노인을 둘러싼 가족들의 갈등과 복지 등 사회문제도 다루고 있다.

읽는 내내 고령화 사회가 몰고온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에 공감했다. 마치 지금 주변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무려 50여 년 전인 1972년도 작품이다. 당시 일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왔고 복지 문제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문학의 힘이란 이렇게 지대하다.

책 '황홀한 사람'. 청미출판사. [사진 홍미옥]

책 '황홀한 사람'. 청미출판사. [사진 홍미옥]

그런데 이게 50년 전 이야기? 놀랍게도 강산이 다섯 번쯤 변했을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낯설지 않은 내용이다. 물론 사람 살아가는 건 시대를 막론하고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말이다. ‘치매’라는 현실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책임을 두고 서로의 무게를 다투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지금과 비교해도 다를 게 없다. 두려움에 책임을 회피하고픈 아들, 의무와 진심을 저울질하는 며느리, “엄마·아빠는 저렇게 오래 살지 마”라고 외치는 손주. 국가의 시스템은 어딘지 미덥지 않고 중년에 접어든 자식은 고단하기만 하고….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막연한 불안함을 느끼는 독자인 내가 있다.

두려움 대신에 준비를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그림 속 저 장면이다. 여느 날처럼 노인회관에서 보호를 받고 나오던 노인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선다. 길 저편 담장 너머에 비를 흠뻑 맞은 키 큰 나무를 바라보는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꽃을 피운 양옥란 나무다. 비록 치매 노인일지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보통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일까?

그래! 기억을 잃어 사랑하는 가족을 몰라보아도 마음속 깊은 감성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황홀한 시간에 서 있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다행이다. 비록 양옥란꽃이라는 걸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꽃나무를 그려보고 싶었다. 키가 훌쩍 큰 기억을 잃은 노인과 그를 돌보는 며느리도 함께.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맴도는 생각은 나도 소설 속 노인의 자리에 서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것이다. 50년 전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한동안 두렵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90세에 가까운 친정 어머니가 있고, 나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어딘가가 불편하고 깜빡깜빡 잊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중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올 수밖에 없는 노화와 그에 따른 현상이라면 마냥 두려워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평범한 우리가 복지제도를 만들거나 시스템을 뜯어고칠 수는 없는 일이겠다. 예전에 비하면야, 특히 노인복지는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도 준비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봐야겠다. 걷기, 소식, 취미생활, 정기검진, 친구, 봉사 등 추리다 보니 해야 할 게 많다. 더불어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긍정적인 생각’이다. 많은 연구 결과가 말해주 듯 긍정적 사고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과학이나 의학의 영역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인생의 끝에서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진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드라마 속 대사처럼 인생의 끝에서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사진 드라마 '눈이 부시게' 포스터]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다. 연기자들의 더할 나위 없는 명품연기는 물론이오, 지금껏 사랑받고 회자하는 극 중 대사는 볼수록 읽을수록 감동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극 중 대사-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다’는 아름다운 긍정이다. 인생의 끝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도 살아서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한 걸음씩 나아가 볼 작정이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