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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이해진 사람'을 건들수 있나···네이버 앞 3가지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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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GIO), 한성숙 대표, 최인혁 COO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GIO), 한성숙 대표, 최인혁 COO

새로운 DNA인가, 도로 대기업인가. 지난달 네이버 개발자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한국 사회 신(新) 주류로 부상한 IT기업의 이면을 드러냈다.

자수성가한 유능한 창업자, 직급 없이 ‘OO님’으로 부르는 수평적·자율적 문화, 과감한 투자와 기술력. 네이버·카카오로 대표되는 IT기업이 자랑해 온 새로운 기업 문화다. 그러나 이제 창업자의 아우라는 절대권력으로, 자율적이라는 조직 문화는 ‘사적 지배’로 흐르기 쉬운 '구조적 결함'에 시선이 모아진다. 네이버는 이사회를 통해 내부 조사 중. 그러나 이런 절차와 별개로, 네이버는 답을 미룰 수 없는 3가지 질문을 마주하게 됐다.

① 이사회는 ‘이해진 사람’ 건드릴 수 있나

네이버의 이번 사건 처리는 ‘이사회 독립성의 시금석’으로 관심을 모은다. 임시 직무정지된 4명 중 네이버 핵심 경영진인 최인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있어서다. 개발자 A씨 사망 후에 책임리더(임원) B씨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됐는데, ‘네이버에서 문제를 일으켜 타사로 이직한 B씨를 재입사시켜 임원을 맡긴 이가 최COO’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네이버 노조도 이같이 주장한다.

그간 네이버는 “우리 이사회는 경영진에 대한 독립성을 확보했다”고 자부해 왔다. 이해진 창업자(당시 이사회 의장)는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네이버의 동일인(총수)은 내가 아닌 네이버’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총수로 지정됐다. 그는 2018년 초 의장직을 외부인사(변대규 휴맥스 회장)에게 넘기고 사내이사(등기임원)직도 내려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후 직함은 미등기임원인 글로벌투자책임자(GIO). 회사는 올해 업계 처음으로 ESG(환경·사회공헌·윤리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ESG 채권도 발행했다.

사건 조사를 맡은 네이버 이사회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주축은 사외이사 3인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최인혁 COO가 중징계 받을 가능성은 낮게 본다. ‘B씨의 갑질에 대한 최 COO 책임’의 구체적 고리를 밝히기 쉽지 않은 데다, 최COO는 이해진 GIO가 삼성SDS 시절부터 함께 일하며 신임한 인물이라는 것. 네이버 측은 “철저한 내부 조사를 하고 있고, 경영진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IT업계 인사는 “네이버 계열사 이사진을 창업자 측근 3~4인이 독식하는 걸 보라”고 했다. 실제로 네이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최 COO는 네이버 내 8개사 임원을 겸하는 등, 소수의 본사 경영진이 계열사 임원직을 많게는 10곳 이상 겸한다. 모두 네이버 창립 때부터 이 GIO와 함께 한 이들이다. 이러한 창업자의 신뢰가 또 다른 권력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책임경영을 한다는 차원이며, 다른 임원들의 계열사 겸직 사례도 많아 폐쇄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앞서 2018년 투명성위원회(현 리스크관리위원회) 의결로, 네이버 사내이사 김모 씨가 직위해제됐다. 김씨가 자녀와 조카를 회사에 부정 채용했다는 의혹을 조사한 결과였다. 그러나 김씨는 현재 네이버 해외 계열사에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역시 삼성SDS 시절부터 이GIO와 함께 한 사이다.

네이버 조직 변화 타임라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네이버 조직 변화 타임라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② 수평적·자율적인 문화, 구성원도 동감하나

A씨의 부고가 지난달 25일 네이버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직후,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는 네이버 직원들이 올린 B씨의 각종 갑질 사례와 정보가 공유됐다. 조직문화에 대한 평소 불만도 쏟아져 나왔다. “어차피 묻힐 것”이라는 자조적 반응도 눈에 띄었다. 그간 네이버가 강조한 수평·자율의 조직 문화와 구성원 체감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의미다.

네이버는 2017년 초 임원 제도를 없앴다가 2019년 초 ‘책임리더’를 신설해 부활시켰다. 책임리더는 비서가 딸린 조직장으로, 계약직이며 보유 주식량 공시도 하는 일반 대기업의 미등기임원과 같다. 책임리더가 인사평가권을 갖는데, 이는 직원 성과급에 직결되며 스톡옵션 배분에도 영향을 준다. 올해 초 네이버 보상을 놓고 노조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 ‘성과급 기준의 투명한 공개’였을 정도다. 네이버 노조 측은 “책임리더의 위계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한편, 효율을 중시하는 소통 방식의 맹점도 드러나고 있다. 책임리더가 팀장을 거치지 않고 팀원에 업무지시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생기는 문제다. 네이버 노조는 “이런 소통 방식이 직장 내 따돌림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 업무 지시는 중간 관리자를 지능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다”며 “호칭은 수평적이어도 행동은 군대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비단 네이버만의 문제는 아니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IT위원회가 판교·IT 노동자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거나 목격했다고 답했다.

판교 IT노동자 근로 실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판교 IT노동자 근로 실태.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③ 기술과 서비스, 국내와 글로벌, 다 잡으려다 놓친 것

네이버는 글로벌 진출과 국내 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다. 과감하게 투자하는 기술 기업이면서, 점유율에 민감한 서비스 기업이기도 하다. 노조는 이 사이에서 조직원들이 받는 실적 압박이 높아졌다고 했다.

한동안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와 신중호 일본 Z홀딩스 최고제품책임자(CPO)가 라인(LINE) 등 글로벌을, 송창현 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기술력(기술 자회사 네이버랩스)을, 한성숙 대표가 국내 경영을 맡는 구조였다. 그러다 2018년 초 이해진 창업자의 등기임원직을 최 COO가 넘겨받았고, 9개월 뒤 송창현 CTO가 퇴사했다. 네이버가 ‘한성숙+최인혁’ 비즈니스 리더 투톱 체제로 바뀐 시점이다. 2019년 초 최 COO는 네이버랩스의 등기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가해자로 지목된 B씨가 네이버에 재입사한 때도 이 시점이다.

사망한 A씨가 속했던 조직은 네이버랩스에서 COO 산하로 이동하게 된다. ‘돈 쓰는 연구·개발 조직’에서 ‘돈 벌어야 하는 사업 조직’으로 이동한 셈. 네이버는 이에 대해 “해당 서비스의 타 서비스 연계를 위한 조직 이동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인 2020년 초, A씨 조직 기존 책임리더가 퇴사하고, B씨와 C씨는 새로운 책임리더로 승진 발탁됐다. 두 사람은 현재 직무정지 상태로 내부 조사를 받는 중이다.

네이버 노조는 7일 오전 이번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노조는 A씨의 사업부 외에도 검색광고·디자인·음악·쇼핑 사업부의 업무 압박이 높다고 파악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한 사내 벤처(CIC) 소속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조가 설문 조사한 결과(응답자 55인), 10%가 ‘52시간 초과 근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네이버 노조는 향후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도 요청할 계획이다. 국회 류호정(정의당) 의원실도 노동부에 네이버 근로실태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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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현ㆍ김정민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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