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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영달의 함께 다르게

정치에 난도질 된 ‘수능’의 아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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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대학입시는 청소년들에게 인생의 향방을 결정짓는 최대 전환점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은 바로 이러한 입시제도의 중심이자 꽃이다. 수능이 중심이 되는 정시 비율은 현재 주요 대학에서 40% 이상으로 확대되었고, 수시 모집에서도 많은 대학들이 수능 최저등급을 제시하고 있을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 고3 수험생들이 일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비하는 이토록 중요한 시험을 밥 먹듯 바꾸면 어떻게 될까? 수험생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 것이다.

48만 명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능 #정치의 우격다짐에 난도질당해 #의문의 불공정과 파행을 잉태 #교육은 교육의 기준으로 바꿔야

교육부가 발표한 2022년도 수능 기본 계획에 따라 올해 수능은 최초로 문·이과 통합형으로 치러진다. 특히 수학 영역의 경우 이과 ‘가형’, 문과 ‘나형’으로 평가가 별도로 이루어진 과거와 달리, 문·이과 성향 학생들 모두 공통과목(75%, 22문항, ‘수학I’과 ‘수학II’)에 응시하고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에서 1과목을 선택(25%, 8문항)하여 응시하게 된다. 그런데 문과 성향 학생들은 주로 ‘확률과 통계’ 과목을 선택하는 반면, 이과 성향 학생들은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하여 양자가 공통과목 문제로 경쟁하는 구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수능 수학에서 문과 성향 학생들의 불리함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되어 왔으며, 그 우려는 지난 3월 교육청 주관 모의고사 결과로 현실화되었다. 서울 16개 고등학교 4451명에 대한 표집조사에서 드러난 결과, 수학 1등급 학생의 88%는 ‘미적분’ 과목 선택자였고 ‘확률과 통계’ 선택자는 불과 6% 정도에 그쳤다. 이과 학생들이 수학 영역 상위권을 압도적으로 독점한 것이다.

고등학교 진로 탐색에서 문과 성향과 이과 성향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평가 과목이 바로 수학이다. ‘수포자’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수학은 그 난이도 때문에 변별력이 크고 학생 간 수준의 격차가 매우 크다. 수학에 강해 이과를 선택한 학생들과, 수학이 약해서 문과를 택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지금처럼 하나의 울타리에 가두고 상대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지 지난 26년 동안 수능을 주관해온 교육 당국이 모를 리 없다.

함께 다르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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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3일,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 주관으로 치른 예비 수능 모의고사에서도 문·이과 유·불리 논란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 시험은 올해 수능의 출제 경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또다시 손바닥 뒤집듯 평가 방식을 바꿀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문과 성향 학생들은 이번 수능에 핸디캡을 진 채로 각자도생하면서 의문의 불공정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수학 영역의 사교육 열풍이 더욱 거세질 것이며 고등학교는 이미 수능 대비 학교 운영을 강요당하고 있다. 교육 당국이 스스로 나서서 사교육을 권장하고 학교교육을 파행시키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바꿔놓았으니 공교육의 정상화는 그야말로 꿈같은 소리이다.

입시에서 차지하는 수능 비중과 공정성에 대한 논의 과정도 가관이다. 지난 2019년 9월 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후보자 청문회 정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공정의 가치는 교육에서도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대입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였다.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로 인해,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위원회’에서 장시간의 격론 끝에 정했다는 대입 전형의 골격이 무너지고 수능 비중이 더욱 확대되었다. 수능이라는 단일화된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결정이리라.

우리 교육 당국은 조국 사태에서 비롯된 ‘공정한 기회’의 이슈가 수능 평가 방법이 공정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인지, 원칙과 상식을 부정하고 편법을 이용하여 부당 이득을 취한 결과 발생한 일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가.

수능은 6월 모의고사에 응시한 48만 명의 인생을 결정지을 중요한 시험(試驗)이지, 실험(實驗)이 아니다. 학생들은 수 년짜리 입시 제도의 모르모트가 아니다. 정치와 여론에 따라 흔들리며 깊은 고민 없이 제도를 수정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교육은 교육의 기준에 따라 바뀌고 결정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고 정치가 들썩일 때마다 개편의 칼날에 난도질당한 우리의 교육은 신음하고 있다. 정치에 난도질 된 수능의 아픔, 곧 우리 학생들이 받게 될 아픔이다. 우리의 미래가 입을 상처이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