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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팩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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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사회1팀 기자

하준호 사회1팀 기자

오랜만에 A에 관한 얘기를 꺼내보려 한다. A가 자신의 이런저런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도중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정치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책을 냈다고 해서 궁금했다. 불티나게 팔린단 소식에 구매자 행렬에 동참했다. A의 맹목적인 팬이라면 사서 읽어봐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A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적어도 2019년 이후 평소 법조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고를 때 신중하라고 권하고 싶다.

A가 과천으로 일터를 옮길 채비를 할 무렵, 폴리페서에 관한 기사를 썼다. 수화기 너머 격분했던 그의 음성을 아직도 기억한다. ‘모든 S대 교수들이 A와 같았던 건 아니다.’ A는 이 문장을 따졌다. 비선출 정무직 공무원에 발탁된 뒤 대학에 사직서를 낸 전직 국무총리와 전직 사회부총리를 그 예로 들었는데, 이게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A처럼 휴직계를 내고 입각한 교수들은 많지만, A와 같은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라는 취지의 부연 설명에 A는 “그런 예를 알고도 그런 거면 악의적”이라고도 했다.

팩트의 취사선택은 사실 왜곡과 다르지 않다. [중앙포토]

팩트의 취사선택은 사실 왜곡과 다르지 않다. [중앙포토]

다시 A의 책으로 돌아오자. A는 검사의 영장청구권이 헌법 조항에 들어간 건 그가 ‘김기춘 검사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쓴 1972년 유신헌법부터라고 했지만, 실제론 1963년 5차 개정 헌법부터(당시엔 ‘검찰관’)다. 미국 검사의 수사권에는 엑스(X) 표시를 하곤, 미국 검사가 자체 수사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세모(△) 표시를 해놓아 의아하게 만들었다. 서울남부지검 검사 술 접대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제식구 감싸기’라고 주장했지만, 현 법무부 감찰관이 “제식구 감싸기로 볼 수 없다”고 말한 사실은 누락했다. 수사·기소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주장하면서도, 한때 그가 특수수사 영역인 6대 주요 범죄를 검찰에 남긴 이유는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전 검찰총장의 정계 진출을 신랄히 비판하면서도, 검찰총장의 상관을 자처하며 수사지휘권을 여러 차례 행사했던 전 법무부 장관의 대선 출마 조짐은 같은 잣대로 다루지 않았다. 2019년 9월 6일이 B 교수의 표창장 위조 혐의 공소시효(7년) 만료일이었단 점도 빼먹었다. 피의자 B 교수에 대한 인권을 중요하게 언급하면서, 2019년 3월 당시 민간인 김학의 전 차관에 대한 긴급 출국금지 조치는 “칭찬해도 모자랄 일”이라고 했다. A에 대한 많은 언론 보도 중 유독 한 매체만 집중적으로 인용했다.

이 밖에도 더 있지만, 이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A나 검찰에 대한 사감(私憾)은 없다. A가 수사 과정에서 감내한 고통이나 검찰의 기소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하는 일은 개인적으론 안타깝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지지자들을 위해서라도 “팩트는 정확히!” 했으면 한다. 그가 보냈던 문자메시지 내용처럼.

하준호 사회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