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소리 줄이고, 별풍선 모금 허용하자”…선관위 법 개정 '박차'

중앙일보

입력 2021.06.06 18:15

업데이트 2021.06.06 19:30

지난해 3월 경기 김포의 한 업체가 선거에 사용될 홍보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지난해 3월 경기 김포의 한 업체가 선거에 사용될 홍보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1. 4·7 재·보선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4월 2일, 서울 종암경찰서가 허경영 당시 서울시장 후보 캠프 선거운동원이던 50대 남성 A씨를 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유세차 음악 소리가 너무 크다. 좀 줄여달라”고 요구한 주변 행인의 차 유리창을 주먹으로 치며 “죽여줄까” 등 폭언을 한 혐의다. 선관위 관계자는 “전국 단위 선거 때마다 경찰·선관위 등에 접수되는 소음 신고 건수가 하루 수백 건, 많게는 수천 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2. 30대 직장인 B씨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후보를 ‘준스톤’으로 부르며 지지한다. 지난달 28일 “후원회 가동을 시작한다”는 글을 보고 곧바로 20만원을 송금했는데 며칠 뒤 TV 토론회를 보다 ‘내가 보낸 후원금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쓰일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 검색 끝에 선관위에 문의했지만 “별도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만 회계 자료를 받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앙선관위가 생활 속 유권자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 유세 소음 갈등, 정치자금 공개 청구 등 손톱 밑 가시처럼 여겨지는 관련 규제를 시대에 맞게 바꾸기 위해서다. 20대 대선을 9달 남긴 시점에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를 반영한 움직임이다.

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6일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과 급변하는 선거·정치환경에 부합하는 정치관계법 제도의 선진화는 선관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지난 4~5월 공직선거법·정당법·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데시벨(dB) 선 긋고, 확성기 시간 축소

4.7 재·보선을 앞둔 지난 3월 국가혁명당 허경영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마이크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4.7 재·보선을 앞둔 지난 3월 국가혁명당 허경영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여의도의 한 백화점 앞에서 열린 집중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마이크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는 우선 선거철 스트레스 유발 요인으로 곳곳에서 지목되는 확성장치 소음 규제 강화(공직선거법 79·102조 개정)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A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유세 차량 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선거 때마다 반복돼 왔다. 지난 2006년 “공직선거법이 소음 제한 기준을 두지 않아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고, 2018년에는 ‘선거 유세차 스피커 볼륨 제한법을 실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나왔다.

개정의견에서 선관위는 ‘차량용 3KW, 휴대용 30W 이내’를 신설 기준으로 제시했다. 30W는 70dB 크기 소리를 20m 반경에 송출할 수 있는 출력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주거지역·학교·병원 55∼80dB, 그 밖의 지역은 65∼95dB’로 소음 상한을 규정하지만, 선거 관련 공개장소 연설·대담은 적용 대상이 아니라 출력 제한을 전혀 받지 않는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금은 각 캠프가 선거 후 확성장치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좋은 성능의 앰프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용 오전 7시~오후 10시, 휴대용 오전 6시~오후 11시로 돼 있는 확성장치 사용 시간도 각각 오전 8시~오후 8시, 오전 7시~오후 9시로 세 시간씩 줄여야 한다는 게 선관위 제안이다.

회계 투명화·‘별풍선’ 모금 허용 추진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설훈(왼쪽부터), 김종민, 황희 의원이 민주당 유튜브 채녈에서 '추미애 장관 아들 특혜??? 팩트나 알고 말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설훈(왼쪽부터), 김종민, 황희 의원이 민주당 유튜브 채녈에서 '추미애 장관 아들 특혜??? 팩트나 알고 말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자금법과 관련해서는 진영별 ‘팬덤’ 정치의 등장에 발맞춰 실시간 회계정보 인터넷 공개를 추진 중이다. B씨와 같은 소액 기부자가 늘고 회계 투명성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게 선관위 판단이다. 개정의견은 1년에 단 한 번 신고하는 각 정당과 의원(후원회 포함)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매달 신고하도록 바꾸고, 선관위가 이를 인터넷에 상시 게시하는 게 골자다.

국민·시민단체·언론 등의 검증을 언제든 받는 한편, 제때 공개하지 않는 경우 과태료도 물리자는 취지다.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는 연 1회 신고 자료의 열람 기간(공고일로부터 3개월간)을 따로 설정한 현행법 규정(42조)이 국민의 알권리 침해 측면에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대신 정치자금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선관위는 ‘현재 금지돼 있는 소셜미디어 후원서비스를 통한 유료아이템 모금을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정치자금법(10·14조)을 고쳐 BJ나 유튜브크리에이터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별풍선’이나 ‘슈퍼챗’ 같은 방식으로 정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유튜브 '태영호TV'. [유튜브 캡처]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유튜브 '태영호TV'. [유튜브 캡처]

후원회 ‘지정권자’만 직접 방송에서 모금하고, 추후 소셜미디어 업체(유튜브 등)에서 후원인 인적사항을 받아 정치자금영수증을 발급하도록 하면 회계 투명성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선관위 판단이다. 단, 인적사항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해당 후원금을 국고에 귀속할 방침이다.

논란 딛고 “합리적 개선”

지난달 한 차례 논란을 부른 정당가입 연령 하향(18세→16세)의 경우 “16세 이상 미성년자 투·개표 참관 허용, 청소년 모의투표 허용 등과 함께 참정권 확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게 선관위 측 설명이다. 지난 2018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은 당원의 자격이나 가입 연령 등을 정당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영국·독일·프랑스·스위스·캐나다 등 많은 국가들에서 당원 가입 연령이 선거 연령보다 낮다”고 분석했다.

지난 4·7 재·보선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왜 하죠’란 여성단체의 현수막을 불허해 야권의 반발을 샀던 것과 관련해서는 4월 22일 아예 관련 규정(공직선거법 90·93조)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또 한차례 국회에 제출했다. 이미 지난 2013년과 2016년 “시설물·인쇄물을 이용한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두 차례 폐지 의견을 냈지만, 법 개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이번에 낸 의견들 역시 법제화는 국회의 일이다. 선관위는 1994년 3월 16일 공직선거법 제정 이후 31차례에 걸쳐 1048건의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 중 47.1%(494건)가 법 조문으로 세상에 나왔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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