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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혈맹은 노르웨이?…북유럽에 꽂힌 與 주자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에서 북유럽 모델이 정책 대안으로 뜨고 있다. 여러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이를 언급하면서다. 여론조사에서 여권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표적이다. 이 지사는 지난달 7일 페이스북에서 "중부담·중복지를 거쳐 북유럽 같은 고부담·고복지로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증세 과정에서 (기존 복지제도를 폐지하지 않아도 되니) 기본소득 체험 기회도 있다"고 말했다.

복지 분야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이 지사는 지난달 27일 “핀란드는 100년 전인 1921년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했다”며 유사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북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떼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는 여성과 남성의 육아휴직을 장려하는 국가정책과 기업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보육 국가책임제를 거론했다.

복지 넘어 정치·경제·사법·국방 등 전방위적 북유럽 거론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과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경제성장 비전을 북유럽에서 찾고 있다. 지난달 31일 토론회 기조발제를 통해 “북유럽처럼 중산층이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중산층경제를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2월 한국전력을 방문한 자리에선 “덴마크의 DONG에너지 회사가 신재생에너지 플랫폼 기업으로서 북유럽 일대의 에너지를 총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런 기업이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 사이에선 이밖에도 “스웨덴의 안정과 발전의 밑거름이 된 ‘목요클럽’과 같은 대화모델을 되살려야 한다”(정세균 전 총리. 2020년 1월7일 총리 인사청문회) “스웨덴·노르웨이처럼 모병제 중심의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자”(박용진 의원. 4월 언론인터뷰) “북유럽처럼 전산화 프로그램을 통해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아도 정부가 맞춤형으로 위기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이광재 의원. 1월 언론인터뷰) 등 다방면에서 북유럽 제도 도입 주장이 나온다.

민주당에서는 과거에도 북유럽 제도 도입을 도입한 인사들이 적지 않았지만, 주로 복지·교육 분야에 국한됐다. 반면 최근에는 정치·사법·국방·경제 등 거의 전분야에 걸쳐 북유럽 모델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다른 점이다.

“보수는 리틀 아메리카, 진보는 빅 스웨덴?”

2019년 6월 북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기자단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6월 북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스웨덴 스톡홀름 왕궁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과 기자단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심이 쏠리는 건 북유럽 따라하기 주장이 다방면에서 범람하는 배경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보수진영은 리틀 아메리카, 진보진영은 빅 스웨덴에 가까운 지향을 가졌다. 그런 토론은 몇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고 말했다. 상당 기간 토론을 거친 끝에 진보진영 전반에 작은 미국(인구 3억3000만 명) 보다는 큰 스웨덴(인구 1000만 명)이 인구 5000만명의 한국 현실에 더 적합하다는 구상이 퍼져있단 얘기다. 김 교수는 “단순히 복지국가 모델을 넘어서, 민주당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북유럽 국가들을 더 모범국가로 여기기 때문에 해당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의 연속성 역시 언급된다. “이 정부의 키워드인 ‘포용’이란 말을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선점하려 하는 과정에서 접목할 만한 해외 선진사례로 북유럽이 주목받는 것”(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이란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북유럽 3국(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순방에 나서 현지 산학 연구단지, 스타트업 클러스터 등을 폭넓게 돌아봤다. 당시 순방을 문 대통령이 공언한 ‘혁신적 포용국가’ 힘싣기 행보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성장·복지·환경·다양성 등 측면에서 현재로선 북유럽이 가장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이란 공감대가 당내에 폭 넓게 형성돼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등 위기상황에서 북유럽 국가의 제도적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은 점 역시 원인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스웨덴 등 일부 국가가 집단면역에 실패하는 등 논란이 있긴 했지만, 코로나19로 나타난 사회 전반의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 했다는 이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유럽 연구를 전담하는 오태현 전문연구원은 “북유럽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재택근무를 유연하게 허용해줬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 새롭게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덜 필요했다”며 “노동형태를 유연하게 가져간 반면 혁신·친환경 기술에 대한 투자비중이 높고 성과도 내다보니 자연히 국내에서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유럽이 하나의 프레임처럼…성찰적 고민 필요” 주장도

다만 일각에선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높은 세금, 사회적 타협의 역사 등 국내 실정과 다른 점이 적지 않은데 무차별적 도입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스웨덴 재벌의 상속 허용, 보수당과 사민당의 정치적 갈등 등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반면 상징적 이미지로 북유럽이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며 “'북유럽이 잘한다고 하니 그냥 따라하자'고 하면 정당화가 되는 프레임처럼 됐다. 실제 사회적 타협까지 가려면 좀 더 성찰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노르웨이는 산유국이라는 점, 스웨덴은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점 등 사회 전체적인 부분을 함께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한영익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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