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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원→3만원 추락에 얼굴 파묻는다…20대 코인러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2021.06.06 09:00

업데이트 2021.06.0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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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개미 일러스트. 장유진 인턴

2030 개미 일러스트. 장유진 인턴

어느 20대 '코인러'의 일기

"아오 오늘도 파란 불이네요. 빨간 불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오전 7시, 단톡방이 벌써 시끌벅적하다. 차트가 파란 글씨로 가득한 걸 보고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일단 안도한다. 실은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지난주 산 '잡코인'이 밤새 오르락내리락 널뛰기하는 통에 스마트폰이 쉴 새 없이 울렸기 때문이다. 코인 알람 앱을 지워야겠다는 생각을 몇 달째 하고 있지만, '빚투'를 시작한 후로는 한순간도 차트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다.

[밀실]<제70화>
2030 개미를 만나다

지금 있는 단톡방은 2년 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중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합법화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른바 '시진핑 빔(beam)'을 맞고 시작된 상승장에 '코인러'가 몰렸다. 서로 일면식은 없지만, 하루에도 쉴 새 없이 출렁이는 코인 시장에서 버티다 보니 동지애가 생겼다.

연초 일론 머스크 때문에 '도지코인' 등 별의별 잡코인이 뜰 때는 하루에 100여 명이 새로 들어오기도 했지만, 눈치 빠른 사람들은 '1000% 수익 인증샷' 따위를 남기고 떠난 지 오래다. 남은 사람은 나처럼 상승장을 기다리며 하릴없이 버티는 이들뿐이다.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에서 관계자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를 살펴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에서 관계자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를 살펴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뉴스1

회사로 출근하니 최 대리가 부장과 수다를 떨고 있다. 어제 나한테 자기 일 떠넘기고 '칼퇴근'하더니 부장과 술 한잔한 모양이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한 나와 달리 최 대리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나보다 2년 빨리 입사했지만, 업무와 관련해선 배울 게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의 특기는 '사내 정치' 능력 하나뿐이다. 후배와 함께한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공은 다 자기가 챙기고, 실패하면 슬쩍 발을 빼버린다. 이런 직장을 하루라도 빨리 탈출하려면 코인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잠시 짬이 생겨 다시 차트를 들여다본다. 아침에 유일하게 전일가보다 70만 원 올랐던 코인이 반나절 사이에 3만 원으로 녹아내렸다. 책상에 얼굴을 파묻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주식 차트를 보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pxhere

주식 차트를 보는 모습. 기사 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pxhere

어느 직장인의 씁쓸한 일기입니다. 밀실팀이 만난 '코인러'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하루죠.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불황'과 초저금리 시대, 돌파구를 찾는 청년들이 주식으로, 암호화폐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난 1월 모바일 금융 플랫폼 '토스'의 개발사 비바리퍼블리카가 20~30대 1093명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9명(89%)이 '주식을 하고 있거나 앞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답했다고 해요.

'2030 개미'들은 국내외 증시는 물론 논란의 암호화폐 시장에까지 거침없이 뛰어듭니다. 지난 4월엔 한 암호화폐가 상장된 지 30분 만에 가격이 1000배 치솟자 "투자보다는 도박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상당수 청년 개미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60억' 인증샷에 '빚투'까지…코인러의 고백 

지난 2월 발렌타인데이 때 코인러 박모(37)씨가 암호화폐 거래소에게 선물받은 초콜렛. 본인 제공

지난 2월 발렌타인데이 때 코인러 박모(37)씨가 암호화폐 거래소에게 선물받은 초콜렛. 본인 제공

밀실팀이 만난 2030 개미들은 코인의 큰 변동성이 투자의 자극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직장인 A씨(28)는 수익금 10억 원을 목표로 4년 전 암호화폐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첫 투자금 20만 원을 2000만 원으로 불리며 "스타트를 끊었다"고 했어요.

문제는 온라인에서 알게 된 코인러의 '수익 60억 원 인증샷'이었습니다. 그 사진을 본 A씨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대출 받아 코인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쌓인 빚이 1억 5000만 원에 달하자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뗐죠. 최근엔 빚을 갚아 나가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 '빚갚는빚쟁이TV'에 올리고 있습니다.

A씨는 "'코인쟁이'의 착각은 자기도 100만 원만 있으면 몇십억 원을 쉽게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투자로 잃은 돈을 투자로 메꾸려 하니 빚이 쌓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죠. 유튜브 채널 '억텐션'을 운영하는 코인러 박모(37)씨도 "투자를 하다 보면 몇천만 원을 벌든 잃든 무감각해진다. 차트에 찍힌 금액이 현실의 돈이 아니라 게임머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빠를수록 좋은 은퇴…부동산 폭등도 투자 부추겨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4길 14 2층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고객센터 전광판. 신인섭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4길 14 2층에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고객센터 전광판. 신인섭

하룻밤 사이 연봉에 맞먹는 돈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위험한 게임'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밀실팀이 만난 이들은 최대한 빨리 직장을 퇴사해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재정적 자립을 통한 조기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등장과 같은 맥락이죠.

2030 개미에게 직장은 '장래 희망'이 아니라 생계유지의 수단일 뿐입니다. 조직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해가며 정년을 채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예 취업 자체를 단념하고 투자에 '올인'하기도 합니다.

유튜브 채널 '조프리의후라이데이'를 운영하는 조현아(24)씨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지만 취업 대신 주식 투자로 돈을 벌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씨는 "평생 직장을 다니며 국민연금을 납부해도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크다. 일하지 않아도 자본으로 놀고먹을 수 있을 만큼 이익을 거두는 게 목표"라고 밝혔죠.

지난달 30일 서울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지난달 30일 서울시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부동산 시장 과열 등으로 월급만 모아서는 자립이 어려운 현실도 이들의 투자를 부추깁니다. 지난 3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이 월급을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서울에 중간 정도 되는 아파트를 사려면 22년이 걸린다고 하죠.

프로그래머로 10년간 같은 회사에서 일하다 지난해 퇴사한 박씨는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버는 수입이 전 직장에서 받았던 월급보다 많다. 산수로 계산해봐도 평범한 직장인이 가정을 꾸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소한 변수에 시쳇말로 '떡상'과 '떡락'을 반복하는 암호화폐 시장. 그곳에 미래를 베팅한 2030 개미들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박건·백희연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백경민, 석예슬·장유진 인턴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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