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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펜트하우스’를 보나…현실이 절망적일 때 막장이 뜬다[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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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문화팀장의 픽 : 막장드라마는 왜

막장 드라마 시대가 활짝 열렸습니다.

4일 밤 시즌3 첫 회를 연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SBS) 뒤를 이어 12일엔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TV조선)도 시즌2를 시작합니다. 시청률 30% 넘기며 선전 중인 문영남 작가의 ‘오케이 광자매’(KBS2)까지, 막장계의 3대 작가 작품이 동시에 방송되는 초유의 시대입니다.

시청자들은 왜 막장 드라마에 마음을 빼앗기는 걸까요. 그 이유를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와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의 조언을 들어 짚어봅니다.

4일 첫 방송한 '펜트하우스' 시즌3. [사진 SBS]

4일 첫 방송한 '펜트하우스' 시즌3. [사진 SBS]

#1. 난 저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막장 드라마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는 의외로 윤리적ㆍ도덕적입니다. 살인이 밥 먹듯 간단한 ‘펜트하우스’의 궁극적 목표가 권선징악이고, 불륜이 일상인 ‘오케이 광자매’도 결국엔 가족애로 훈훈한 마무리를 할 게 분명하듯 말입니다. 이런 ‘윤리적 알리바이’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킨 뒤 인간의 허위의식이나 속물근성을 과장된 캐릭터를 통해 직설적으로 그려내는 게 막장 드라마의 특징이지요. 블랙코미디의 속성과 풍자의 요소도 자연스레 갖추게 됩니다.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 드라마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인데, 여기에 막장의 인기 비결이 있습니다. 황당한 캐릭터의 어리석고 악한 행태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동시에 ‘나는 저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갖게 됩니다. 일상에서 좀처럼 느껴보지 못하는 도덕적 우월감을 만나는 순간, 막장에 빠져들 수밖에요.

문영남 작가의 주말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 [사진 KBS]

문영남 작가의 주말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 [사진 KBS]

#2. 자극의 쾌감만…성찰할 틈은 주지 않는다

자극적인 설정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감정이입할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주인공에게 비극이 이어져도 마음 괴롭지 않게 지켜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자극의 강도만으론 명작과 막장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스토리에 막장 요소를 갖춘 작품들이 명작으로 통하는 이유는 수용자들의 성찰과 각성을 유도하는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사유할 틈을 주지 않고 강한 자극만 빠르게 반복합니다. 성찰할 정신적 에너지가 없는 시청자들에게 도리어 휴식 시간이 되는 이유지요.

#3. 현실이 절망적일 때 막장이 뜬다

주로 아침드라마 시간대와 평일 오후 8시대에서 활약하던 막장 드라마가 갑자기 대세로 떠오르는 시대가 있습니다. 이영미 평론가는 2008∼2009년을 그 시기로 꼽았습니다. 김순옥 작가의  ‘아내의 유혹’(SBS) 대성공 이후 평일 밤 10시 미니시리즈 시간대에 ‘에덴의 동쪽’(MBC), ‘미워도 다시한번 2009’ (KBS2) 등이 방송되던 시기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가 갑자기 어려워졌을 때였지요. IMF 극복한지 몇 년이나 됐다고 또 경제위기? 그렇게 속이 부글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막장드라마로 도피를 합니다. 현실 사회 생각을 아예 안하고 싶은 심리를 막장이 파고든 셈이지요.

2008년 금융위기 무렵 방송돼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아내의 유혹'. [중앙포토]

2008년 금융위기 무렵 방송돼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아내의 유혹'. [중앙포토]

2020∼2021년 다시 막장드라마가 부상한 배경에도 괴로운 현실이 있을지 모릅니다. 이영미 평론가는 트로트 붐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석합니다. ‘인간 뭐 대단한 거 있어?’란 심리에서 품위 따위는 집어치워버린 대중의 속내. 트로트와 막장 인기의 씁쓸한 이면입니다.

이지영 문화팀장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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