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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폭력 신고하라면서 "무고는 징계" 엄포…이게 軍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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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국방헬프콜 안내판. 장병은 각종 고충과 범죄와 관련해 24시간 헬프콜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군은 알려 왔다. 뉴스1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 국방헬프콜 안내판. 장병은 각종 고충과 범죄와 관련해 24시간 헬프콜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군은 알려 왔다. 뉴스1

군 당국이 성폭력 특별신고를 독려하면서 “무고형 고발은 상관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엄중히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놔 논란이다. 현장에선 “사실상 신고를 하지 말라는 말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누구라도 신고할 수 있다” 독려 속 #“상관 명예훼손죄 엄중 처벌” 강조 #현장선 “불이익 주겠다는 것” 반발

지난 3일 국방부는 오는 16일까지 성폭력 특별신고 기간을 운영한다는 지침을 일선 부대에 하달했다. 앞서 공군 여중사가 성폭력 사건 여파로 극단적 선택을 한 뒤 파문이 커지자 긴급하게 내놓은 처방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대 지휘관은 “특별신고 기간 운영 지침과 함께 ‘장병기본권 보장과 군 기강 확립’을 강조하는 별도 지침도 받았다”고 말했다.

일부 부대에 전달된 지침은 “지휘관은 ‘온정적 처리’를 하면 안 된다. ‘신상필벌’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어서 “무고형 고발은 엄중히 징계한다”며 “특히 상관에 대한 무고는 군형법의 ‘상관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엄중히 처벌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군검찰이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관련 비행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가운데 4일 오전 충남 계룡대 정문에 공군본부 현판이 보이고 있다. 뉴스1

군검찰이 성추행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 부사관 사건과 관련해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관련 비행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가운데 4일 오전 충남 계룡대 정문에 공군본부 현판이 보이고 있다. 뉴스1

리버티 법률사무소 김지진 변호사는 “무고죄 처벌을 거론한 것 자체만으로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무언의 압박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공군 성폭력 사건처럼 성폭력 가해자가 대부분 직속 지휘관이거나 더 높은 계급의 상관인 군대의 조직 특성을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대부분 상관인데 군형법의 ‘상관 명예훼손죄’를 거론한 건 사실상 피해자에게 신고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같은 '상관 무고 처벌' 명시는 “목격자도 신고할 수 있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도 신고하라”고 강조한 성폭력 특별신고와, “가해자 처벌을 묵인ㆍ방관할 경우 가해자와 같은 수준의 징계를 하겠다”고 적시한 군 성폭력 근절 지침과도 엇박자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9월 제38대 이성용 신임 공군참모총장(가운데)과 이임하는 제37대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오른쪽). 이 총장은 4일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공군 제공

지난해 9월 제38대 이성용 신임 공군참모총장(가운데)과 이임하는 제37대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오른쪽). 이 총장은 4일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사의를 표명했다. 공군 제공

익명을 요구한 군대 성폭력 예방 교육 담당관은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피해자와 신고자를 무고죄와 상관 명예훼손죄로 고발한다”며 “군 당국은 수사를 차일피일 미뤄 피해자와 신고자의 고통을 방치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ㆍ신고자 보호 대책도 없이 무고죄 처벌을 강조하면서 ‘특별지침’이라는 보여주기 행사에만 초점을 뒀다는 지적이다.

군 당국은 성폭력 예방 지침에서 “성희롱 등 성폭력에 대한 범죄 성립이 불명확할 경우 양성평등 담당관과 상담을 받거나 고충심의위원회를 소집할 수 있다”고 해 놨다. 또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의 제44조는 신고자에 대한 비밀을 보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 군 당국의 지침은 이처럼 피해자와 신고자에게 유리한 사정은 밝히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무고죄 관련 언급은 기존에 수차례 통보했던 성폭력 관련 지침에서도 거론됐던 사항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응하는 군 당국의 타성과 관행이 또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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