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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무늬만 ESG’는 금세 들킨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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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31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남양유업의 유제품은 품질이 좋다. 불가리스는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없어도 소비자들이 믿고 마시는 유산균 음료였다. 그런데 굳이 이 회사는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예방 효과를 운운했다가 아예 기업의 문패를 바꿔 다는 처지로 몰렸다. 소비자들이 불가리스를 못 믿은 게 아니라 회사의 정직성을 못 믿게 되었고, 급기야 불매 운동으로 번지며 벌어진 광경이다.

불가리스 코로나19 예방 선전으로 #57년 가업 문 닫은 남양유업 사태 #사회적책임이 기업 생존요건 되는 #ESG 경영 시대 본격화됐다는 신호

코로나19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백신을 맞아도 돌파 감염까지 일어나는 판국에 불가리스의 예방 효과라니…. 이를 발표한 회사 관계자들은 과연 그 말을 믿었을까.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공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회사 안에 없었을까. 오랜 세월 국내 수위의 유제품 회사 자리를 지키며, 그 정도로 높은 품질을 유지한 회사에 사람이 없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생각이 공유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은 거침없이 진행됐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허언을 했고, 소비자들은 분노해 단죄를 결의했고, 회사는 더 버티지 못하고 매각에 이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남양유업 사태는 우리나라에도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시대가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인다. 사실 이 회사의 갑질 경영은 오래된 이야기다. 이미 8년 전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갑질이 밖으로 드러나면서 시작된, 그들의 알려진 파행만 해도 자사 제품의 과대광고, 경쟁사 제품에 유해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비방까지 서슴지 않는 도덕 불감증으로 마구 달렸다. 급기야 그들은 코로나19라는, 이 중대한 사태까지도 마케팅에 활용하려고 들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행태에 염증을 느낀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이 있었지만 경영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제품력이 도덕적 결함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에도 평소처럼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들에겐 일관된 행위였고, 문제는 시대가 바뀐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사회도 기업의 정직성과 투명성, 환경과 지구에 대한 공익적 책임과 사람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ESG시대’에 돌입했다는, 그 변화의 시그널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엄중한 현실은 남양유업 이야기만은 아니다.

선데이 칼럼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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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라는 말은 나온 지도 오래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부각된 것이 10여 년이나 된 만큼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용어에 머물렀다면 이젠 실재하는 경영 환경으로 확 부상한 느낌이다. 이미 투자자들이 ESG경영을 요구하고, 미흡하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등의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재바른 재계와 업계 인사들은 이 변화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이름난 경영인들은 저마다 사회적 책임을 논하고, ESG 전도사를 자처하며 온갖 현장을 누비면서 SNS 인증도 한다. 회사 정관에 ESG 이념을 반영하는가 하면, 폼도 나고 거창해 보이지만 확인하기는 힘든 친환경 경영 전략을 발표한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벌써 ‘ESG워싱’, 기업이 이미지 세탁용으로 ESG를 활용한다는 의심이 만연하다. 이건 내 깊은 의구심이기도 하다. 나는 2019년부터 서울대 의대와 ‘건강경영’을 위한 사회적건강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기획 기사는 드물었지만, 건강 관련 대국민 조사와 참여 기업 모니터링 등을 하며 쉬지는 않았다. 활력 있는 초고령사회가 되려면 국민이 건강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캠페인이다. 노령의 건강은 젊어서부터 관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 직장에서 건강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직장이 직원의 질병이 아닌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일은 이미 웬만한 산업국가들은 나라와 기업이 함께 진행하는 사회적 루틴(routine)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도 기업도 ‘인증’ 외엔 관심이 없기에 우리가 시작해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기업들이 얼마나 직원 건강엔 관심이 없는지 알게 됐다. 직원 건강 증진보다 프로그램 도입이 이미지 홍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관심을 쏟는 것도 보았다. 캠페인에 관심을 가졌던 기업 중 코로나 발발 이후에도 실질적인 직원 건강관리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기업은 한 곳뿐이다.

우리 캠페인팀이 4월에 면접조사한 대국민조사에선 응답자들이 인생의 위기로 꼽은 첫째가 나의 건강 문제(18.6%)였다. 다음이 경제적 어려움(14.7%). 인생의 목표를 묻는 질문엔 가족의 건강한 삶(25.9%)과 나의 건강한 삶(23.4%)이라고 답했다.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가격(47.5%)과 건강(31.3%)순이었고, 선호하는 기업은 건강투자기업이라는 응답이 89%였다.

ESG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이 기여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최근 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도 ESG에 부정적인 기업 제품은 의도적으로 사지 않겠다는 답변이 70%가 넘었다. 기업들이 ESG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1차 고객인 직원 건강 관리도 마케팅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기업의 진정성을 믿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소비자들의 눈은 밝다. ‘무늬만 ESG’가 잠시는 속일 수 있어도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거다.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사회적 책임감’이 되는 시대. 이젠 진정성이 소비자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거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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