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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曰] 차이트가이스트는 정치 대혁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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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30면

한경환 총괄 에디터

한경환 총괄 에디터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후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다른 경쟁 후보들이 예비경선을 1위로 통과한 이 후보 집중공격에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선의의 경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나 ‘촛불’ 이후 존재감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국민의힘 입장에선 6·11 당대표 경선을 그동안 부족했던 힘을 모으는 축제컨벤션으로 치러야 할 것이다. 내년 대선 국면을 관리하게 될 당대표를 누구로 선출하느냐 못지않게 어떤 방식으로 선택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준석 현상’은 구태정치 탈피 요구 #민주주의·신뢰 회복 기대 부응해야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후보 합동연설회를 보면 본말이 한참 전도된 듯하다. 구태의연한 편 가르기와 계파 갈등, 분열을 증식시키는 네가티브 방식으로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36세 0선’ 이 후보를 예비경선 1위로 뽑은 뜻을 십분 살리지 못하는 집단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밥그릇을 깨는 싸움으로 비치는 민망한 아귀다툼도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를 겨냥해 반페미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거나 트럼피즘을 연상시킨다고 공격하기도 한다. 일부는 이 후보가 유승민 계파를 대변하는 아바타라고까지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수긍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감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호재를 맞은 국민의힘으로서는 모처럼 받는 국민의 관심을 이런 식으로 허투루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후보의 선풍 이면에는 세대교체, 물갈이, 정치권 대변혁에 대한 열망이 깔려 있다고 본다. 사실 이 후보의 역량이나 정치 경력 등은 다른 쟁쟁한 후보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모자라는 단점이 당의 새로운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다. 경선 과정이 결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이유다.

지금 국민의힘 입장으로선 당권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다. 먼저 유권자의 신뢰를 되찾는 일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내년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될 2030세대에게 어필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가리키는 달(대혁신)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당권)만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지루한 코로나19 피로에다 정치권의 끝없는 진영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많은 국민은 이참에 구악 정치인들을 한꺼번에 갈아치우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을 것이다. 오로지 권력만을 쫓아다니는 부나방 같은 정치인들이 완전히 소멸되기를 학수고대하는 분위기는 내년 대선까지 죽 이어질 것이다.

물론 나이가 적다고 반드시 참신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정책의 최대공약수를 찾아내고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인이 나이와 상관없이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수 있다.

프랑스는 30대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탄생시켰으며 캐나다는 40대의 쥐스탱 트뤼도를 총리로 선출했다. 오스트리아는 30대의 제바스티안 쿠르츠를 총리로 맞았다. 이들 젊은 정치지도자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나라들의 정치 분위기를 일신한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한국에선 정치적 대립과 갈등, 분열을 일소하고 권력만능주의를 타파할 진정한 ‘새 정치인’을 갈구하고 있다. 30대 기수론이건 40대 기수론이건 60대 기수론이건 제발 좀 제대로 된 정치인들이 나라를 바로 세워 주기를 기대하는 소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준석 후보가 당 대표가 되든 안 되든 ‘이준석 현상’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차이트가이스트(Zeitgeist·시대정신)는 정치 대혁신이다. 여든 야든 이 거센 물결을 도외시했다간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다.

한경환 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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