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그 후 30년

동독 향수 살아나 로트캡헨·암펠맨헨 인기도 부활

중앙선데이

입력 2021.06.0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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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27면

독일 통일 그 후 30년 〈8〉

동독 에어푸르트에 있는 ‘오스트숍’. 1990년대 초반 구동독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품들을 파는 오스트숍 가게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에어푸르트에 있는 ‘오스트숍’. 1990년대 초반 구동독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상품들을 파는 오스트숍 가게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은 항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특히 베를린은 장벽이 세워진 1961년까지 사람들이 공산진영 동쪽에서 서방진영 서쪽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체제경쟁의 최전선이었다.

동독 붕괴 뒤 서독 제품에 열광
새 자극 시들해지자 옛 추억 찾아
동독 물건만 파는 가게도 생겨

동독 유명 브랜드 거의 문 닫아
서독·다국적 기업이 인수해 성장

소련은 서베를린을 동독에 병합하려 시도하며 선전을 통해 붉은 군대가 생필품 공급을 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느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보다도 동독에서 원활한 제품 공급이 중요했다. 장벽 건설로 인해 서독으로의 대규모 탈출이 어려워진 데다 동독 사람들이 TV를 통해 매일 저녁 경이로운 시선으로 서독의 광고 방송을 시청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1940년대 말부터 동독 당국은 국영 판매소와 소매점들을 개설했으며 중앙 백화점과 상점들을 설치했다. 군을 위한 특별 상점도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는 종종 소매가를 밑도는 가성비가 좋은 물건들을 판매했다.

동독 라데베르거맥주, 한때 서독 수출

서독과 마찬가지로 동독에서도 유명 상표가 존재했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었던 화장품 플로레나와 로트캡헨 샴페인 그리고 1932년에 개발된 세계 최초의 합성세제인 페바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바르트부르크와 트라반트 그리고 바르카스와 같은 내구성 소비재인 자동차를 개발했으며 이미 2차 대전 이전부터 유명했던 베를린의 호텔 아들론도 존재했다. 동독의 최상위 노조 기구인 자유독일노조연맹은 심지어 푈커프로인트샤프트호와 아르코나호 같은 대형 유람선을 자체적으로 운영했다. 인기 있는 서독 제품들과 경쟁하기 위해 동독은 클럽 콜라나 로슈토크 소재 ‘샨티 유겐트 모드 인민 기업’의 데님 의류와 같은 유사품들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동독 작센안할트주의 프라이부르크 로트캡헨 양조장에서 제조한 로트캡헨 샴페인은 1894년부터 생산되던 브랜드로서 동독 시절에 가장 인기 있는 샴페인이었다. 2002년 캐나다의 씨그램그룹에 인수됐다.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작센안할트주의 프라이부르크 로트캡헨 양조장에서 제조한 로트캡헨 샴페인은 1894년부터 생산되던 브랜드로서 동독 시절에 가장 인기 있는 샴페인이었다. 2002년 캐나다의 씨그램그룹에 인수됐다.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은 또한 ‘타락한’ 서독 TV의 영향으로부터 인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인 예능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는 별 효과 없는 시도를 지속했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토요일 저녁에 방송했던 쇼인 ‘아인 케셀 분테스’였다. 큰 비용을 들여 아바(ABBA)나 미레이 마티유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이 프로에 출연시켰다.

그러나 동독 주민들은 오리지널과 짝퉁 간의 차이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세울 때까지 그리고 서독이 동방정책을 실시한 이후 동독에서는 서독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았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외화를 벌기 위해 동독에는 서독 제품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인터숍이라는 상점이 출현했는데 여기서는 고급 제품이나 음식들을 취급했다. 외화벌이를 위해 대부분 서독으로 수출했던 동독의 유명한 라데베르거맥주가 그 대표적인 제품이었다.

동독의 붕괴와 함께 동독 제품들은 하루아침에 시장을 잃게 됐다. 1990년 7월에 있었던 화폐통합으로 동독 주민들이 서독마르크 경화를 가지게 되면서 시장에는 서독 물건들이 넘쳐 났으며 동독 상품들은 구석에 밀려 잊혀 갔다. 그러는 사이 동독 기업들은 도산하거나 서독 기업들에 팔렸으며 아주 적은 수만 매우 어렵게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동독에서 인기가 높았던 어린이 저녁 방송의 주인공 캐릭터인 잔트맨헨.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에서 인기가 높았던 어린이 저녁 방송의 주인공 캐릭터인 잔트맨헨. [사진 젤리거,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사람들은 분단 수십 년 동안 서독의 소비재를 TV나 비싼 인터숍의 진열장에서만 봤다. 통일이 되면서 갑자기 코카콜라를 직접 마시거나 폴크스바겐이나 벤츠를 직접 탈 수 있게 됐으며, 밀레 세탁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초콜릿이나 술 또는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자극들도 시들해지자 통일과 함께 찾아온 구조조정으로 인해 생긴 경제적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떤 물건들은 실제 생활에서보다 광고에서 보던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자 동독 사람들은 동독 시절 상품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다. 구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장벽을 다시 세우거나 슈타지와 공산당의 부활을 꿈꿨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값싼 이탈리아산 아스티 스푸만테 샴페인 대신에 로트캡헨 샴페인을 마시고 싶고 할라피뇨보다 슈프레발트산 오이절임이 더 생각나며 스페인 마요르카섬 대신에 구동독 지역 오스트제에서 휴가를 보내고자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즈음부터 베를린을 비롯한 구동독 도시들에서 오스트숍(Ostshop)이라고 하는 동독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상품들은 시각적인 상징물들과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동독 신호등에 사용했던 사람 모양(암펠맨헨)이나 만화영화 주인공인 잔트맨헨과 같이 과거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형태들이다. 오늘날 SNS에서 밈(Meme)으로 칭하고 있는 물건들이 잘 팔린다. 원래 이런 제품들을 만들었던 동독 회사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구동독 시절의 포장만 씌워 판다.

영화 ‘굿바이 레닌’ 동독 향수 부채질

동독 신호등에 사용했던 사람 모양의 암펠맨헨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들이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동독 신호등에 사용했던 사람 모양의 암펠맨헨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들이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마그데부르크의 뢰스트파인 커피회사나 할레의 할로렌 초콜릿회사 그리고 오버라우지츠의 핏 식기세정제회사는 몇 안 되는 생존 기업들이다. 그 밖에 살아남은 성공적인 브랜드인 노르트호이저 화주(火酒)는 엑케스가 인수했고, 슈페 세제는 헨켈로 넘어갔으며, 동독의 담배 브랜드였던 카로는 필립 모리스 소유가 됐다. 이처럼 옛날 동독 시절의 브랜드 이름만 살아남았을 뿐 소유는 대부분의 경우에 서독 기업 또는 다국적 기업으로 이전됐다. 상품들은 완전히 새로 개발돼 품질은 월등하게 좋아졌다.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는 그 시절의 기억에 젖어 있던 동독 출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 절정을 보여 줬던 영화가 세계적으로도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굿바이 레닌’이었다. 이 영화는 한 동독 가족의 시각을 통해 통일을 조명한다. 뇌졸중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어머니가 깨어나자 그동안 벌어진 통일의 충격으로부터 어머니를 격리시키기 위해 아이들은 예전에 사용했던 동독 유리잔과 상자들을 꺼내고 새로 장만한 서독 물건들을 싸서 넣는 소동을 한바탕 벌인다.

이러한 현상들이 존재했지만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는 점차 사회통합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궤적을 반추해 보는 계기로 삼았다. 시각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자기 기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서독 중심의 새로운 소비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이 수월해짐으로써 이러한 배경이 새로운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의 원인으로는 작용하지 않았다.

동독 신호등에 사용했던 사람 모양의 암펠맨헨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들이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동독 신호등에 사용했던 사람 모양의 암펠맨헨 캐릭터를 이용한 상품들이 지금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동독 출신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서독 출신 주민들도 오스트숍에 들어가서 가벼운 마음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가게들이 서독이나 글로벌 브랜드 물건들로 가득 찬 수퍼마켓들을 잠식하거나 몰아내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동독이 소멸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동독에 대한 평가는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동독 붕괴 직후에는 공산 독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터라 거의 모든 동독 주민들이 동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지만 지금은 또 상황이 달라졌다. 동독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의 경우에 가끔 망치나 낫과 같은 동독의 상징물들을 활용하거나 재산 몰수에 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대는 통일된 독일에서 나서 자랐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동독에 관한 인식이 없을뿐더러 지리적인 위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동독 사람’이라고도 느끼지 않는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 사람들은 삼성과 LG 제품을 사용할 수 있고 신라면과 롯데초콜릿을 비롯해서 이미 개성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초코파이를 먹을 수 있게 되어 물론 매우 기쁠 것이다. 하지만 대동강맥주나 강서약수와 같은 북한의 특정 제품들은 통일된 한국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으며 만약 없어지게 된다면 매우 아쉬울 것이다.

번역: 김영수 한스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
독일 킬대학 경제학 석·박사, 파리1대학 경제학 석사, 1998~2002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학대학원 전임강사, 2004~200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부터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 객원교수. 2002년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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