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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야악” 불안한 현대인 비명, 휴대폰 이모티콘으로 소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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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18면

[영감의 원천] 뭉크의 ‘절규’

1 뭉크의 유명한 회화 ‘비명’의 4가지 버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893년 버전, 1893년 크레용 버전, 1910년 템페라 버전, 1895년 파스텔 버전(2012년 경매 신기록). [사진 각 소장 미술관]

1 뭉크의 유명한 회화 ‘비명’의 4가지 버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893년 버전, 1893년 크레용 버전, 1910년 템페라 버전, 1895년 파스텔 버전(2012년 경매 신기록). [사진 각 소장 미술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비명(절규)’은 어쩌면 역사상 가장 많이 패러디된 그림일 것이다.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같은 강력한 라이벌이 있지만, 그 어떤 작품도 뭉크의 ‘비명’ 같이 많은 이모티콘을 갖고 있진 못하다. ‘파랗게 질린 노란 얼굴’이 두 손으로 뺨을 감싸고 입을 크게 벌려 비명을 토해내는 이모티콘이 삼성 갤럭시, 애플 아이폰, 카카오톡, 트위터 등등에 조금씩 변주된 디자인으로 끝없이 등장하고 있다. 왜 휴대폰과 메신저 서비스마다 ‘비명’ 이모티콘을 갖추고 있고, 우리는 그 이모티콘을 소환해 대화에 넣곤 할까?

첫 전시회 혹평, 보이콧 논란까지 #뭉크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 #세기말 격변 체험, 공포·우울감 표현 #현대인 보편적 고통 누구나 감정이입 #불안·질병이 예술의 원동력 되기도

뭉크는 이 주제에 사로잡혀 있어서 여러 번 그렸는데, 회화는 총 4점이고, 판화는 더욱 많다. 그중 뭉크가 최초에 유채·템페라·크레용을 섞어 그린 가장 유명한 1893년 버전 ‘비명’은 고국인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국립미술관에 있다.

올해 초 이 그림에 대해 재미있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그림 상단 왼쪽, 붉은 구름 부분에 보일락말락 희미하게 연필로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이라고 쓴 글귀가 있다. 발견된 지는 꽤 되었지만 누가 썼는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였는데, 이번에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정밀 조사 결과 뭉크 자신이 1895년 즈음에 쓴 것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뭉크, 스페인 독감까지 이겨내고 장수

2 ‘비명’을 응용한 이모티콘의 애플 버전. [사진 각 브랜드]

2 ‘비명’을 응용한 이모티콘의 애플 버전. [사진 각 브랜드]

1895년은 ‘비명’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해였다. 젊은 뭉크는 독일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 오슬로에서 귀국전을 열었는데, 뭉크 자신이 말한 대로 “전시회에 혹평이 빗발쳤고 보이콧 제안까지 있었다.” 심지어 뭉크의 정신 상태가 정상인지에 대한 토론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한 젊은 의학도는 뭉크에게 대놓고 정신 건강을 물으며 “이 그림을 보니 지금 마음이 건강한 상태가 아닌 것 같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 말을 듣고 속이 상한 뭉크가 자조하는 심정으로 이 그림에 “미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이라고 썼다는 것이 노르웨이 국립미술관의 추정이다.

사실 뭉크는 실제로 자신이 미치거나 병으로 일찍 죽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늘 시달리고 있었다. 가족의 육체적·정신적 병력이 있었고, 자신도 어릴 때부터 병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과 5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었고, 13살 때 누나를 같은 병으로 잃었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감정 기복이 심해졌고,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했으며, 뭉크에게도 종교적 생활을 강요했다. 게다가 동생까지 정신병이 생겨 정신병원을 오가게 되었다.

3 트위터 버전. [사진 각 브랜드]

3 트위터 버전. [사진 각 브랜드]

하지만 뭉크의 불안은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업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된 후 파리와 베를린에서 공부하며 세기말 유럽의 격변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노르웨이로 돌아와 진보적 지식인·예술인들과 어울리고 또 싸우며 이러한 혼돈 속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그 와중에 세기말 격변에 대한 매혹과 공포의 충돌, 그로 인한 불안을 느꼈다. 그것은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불안이었다.

뭉크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욘 우베 스테이하우에 따르면, 뭉크의 작품 스펙트럼은 넓은 편이고, 개인적인 것에 천착하기보다 당대의 현대적 급변이 가져온 사회적 집단의식과 기술의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뭉크는 동시대인과 불안을 공유했지만, 또한 각자의 배경과 상황과 생각이 다른 가운데에서 소외감과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가운데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뭉크는 ‘비명’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우울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변했다. 나는 멈춰 서서 난간에 몸을 기댔다-극도로 피곤해져서. 불타는 구름이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짙푸른 피오르(노르웨이 특유의 지형인 협만)와 도시 위에 걸린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다-나는 불안으로 몸을 떨며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무한한 비명(skrik)이 자연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4 카카오톡 버전. [사진 각 브랜드]

4 카카오톡 버전. [사진 각 브랜드]

노르웨이어 원제는 ‘Skrik’고 영어로는 ‘Scream’으로 번역된다. 아주 날카로운 비명 같은 외침, 우리말 의성어로 치자면 “끼야악” 같은 소리 지름을 뜻한다. 그러니 점잖은 ‘절규’보다 ‘비명’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글을 보면 그림의 주인공이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복합적인 이유로 일상적인 “우울”과 “피곤”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느 한순간 임계 수위를 넘어서면서 그의 눈에 비치는 세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시적 감흥을 일으킬 아름다운 저녁놀 구름조차 “피와 칼과 같은 형태로” 자신과 세계를 위협한다! 그러나 그의 그런 상태를 알 리가 없는 친구들은 무심히 계속 걷는다. 주인공은 친구들과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고 철저히 소외된 채 그대로 멈춰선다.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무서운 비명을 입을 벌려 토해내면서, 동시에 그 비명이 “자연을 꿰뚫는 거대한, 무한한 비명”으로 확장되어 메아리쳐 돌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해 귀를 막으면서 말이다.

극작가 입센의 희곡에 영감 많이 받아

5 삼성 버전. [사진 각 브랜드]

5 삼성 버전. [사진 각 브랜드]

그러고 보면 ‘비명’이 드러내는 내재적이고 상존하는 우울과 피로와 불안, 의사소통의 부재와 소외감은 그야말로 현대인이 보편적으로 겪는 고통이다. 특히 이 그림 속 주인공은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는 익명성의 얼굴을 가지고 있어 누구나 쉽게 그림에 자신을 이입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20세기 들어 점점 더 인기를 얻다가 이제는 이모티콘으로 일상에 정착한 것이리라.

이러한 고통은 뭉크 예술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세월 동안 나는 깊은 불안감에 시달렸고, 그것을 내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불안과 질병이 없었다면 나는 방향타 없는 배와도 같았을 것이다”라고 뭉크는 말했다.

그의 정면 돌파에 영감을 준 이들 중 한 명은 노르웨이의 대(大)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이었다. 그가 첫 귀국전에서 혹평에 시달리고 있을 때, 뭉크가 그전부터 존경하던 입센은 트레이드 마크인 흰 사자머리와 구레나룻을 휘날리며 찾아와 전시를 돌아본 후 뭉크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뭉크 씨도 내가 체험한 걸 겪게 될 겁니다. 적이 많아질수록 친구도 많아진다는 걸!”

뭉크는 입센의 희곡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특히 그중 ‘유령’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제 의식과 스타일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불안과 소외감을 더욱 느낄 때 그다음 작품에서 타협하지 않고 더욱 강한 작품으로 정면돌파하는 입센의 행적에서 영감을 받았다. 우리는 뭉크의 ‘비명’이 녹아 들어간 이모티콘에서 그것을 상기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귀엽게 표현되어 도리어 우리가 지금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도 희석되는 느낌이다. 물론 그 덕분에 힐링의 효과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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