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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분석력 탁월, 20년간 연평균 31% 수익 ‘월가 마법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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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22면

[월스트리트 리더십] ‘타이거 매니지먼트’ 설립한 줄리언 로버트슨

‘타이거펀드, SK텔레콤 주식 1조에 매각’. 1999년 8월 24일 중앙일보 경제면 톱뉴스의 헤드라인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타이거)’는 한국 재벌에 대한 공세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타이거는 주주행동주의를 내세우며 SK텔레콤을 압박했고, 안정적인 지분 확보가 다급해진 SK텔레콤은 타이거가 보유한 지분을 비싼 값에 되살 수밖에 없었다. 1년여 만에 타이거가 벌어들인 차익만 10억 달러에 달했으니, 외환위기 이후 빗장이 열린 한국 주식 시장의 최대 수혜자가 타이거였던 셈이다.

숫자 감각 탁월하고 과감한 베팅 #조지 소로스와 헤지펀드 업계 양분 #빌 황 주도, 한국 증시도 뛰어들어 #SKT 투자로 1년에 10억 달러 차익 #공매도·엔화 거래 실패로 손 뗀 후 #수제자들 ‘타이거 컵스’ 운용 지원

차 구입해 테스트, 결함 확인 후 공매도

남다른 결단력과 승부욕으로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한때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성장시킨 줄리언 로버트슨. [게티이미지]

남다른 결단력과 승부욕으로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한때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성장시킨 줄리언 로버트슨. [게티이미지]

줄리언 로버트슨은 1980년 지인들로부터 800만 달러를 투자받아 헤지펀드 운용사 타이거를 설립했다. 그 후 20년 동안 조지 소로스와 경쟁하면서 헤지펀드 업계를 양분했다. 로버트슨의 주요 활동 무대는 주식 시장이었다. ‘헤지펀드 대부’ 소로스가 매크로 투자(외환·채권·원자재)로 명성을 떨쳤다면, 로버트슨은 경이로운 주식 투자로 ‘월가의 마법사’라고 불렸다. 1998년엔 운용 자산이 230억 달러에 달하며 세계 최대 헤지펀드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비록 2000년부터 외부 자금 운용은 중단했지만, 그때까지 연평균 31.5%라는 높은 수익을 고객들에게 안겨주었다.

줄리언 로버트슨 (Julian Robertson)

타이거 매니지먼트 회장 겸 CEO
출생연도 1932년(89세)
최종 학력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경영학과(1955년 졸업)
개인 자산 45억 달러(2021년 5월 포브스 기준)
미국 170위 세계 638위

로버트슨은 철저한 분석과 과감한 베팅으로 유명했다. 어떤 기업이든 레이더에 한 번 포착되면 바닥까지 파고들었다. 그런 후 투자에 대한 확신이 서면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었다. 로버트슨의 이런 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타이거의 애널리스트가 한 자동차 제조사의 엔진 결함 가능성을 제기했을 때였다. 애널리스트의 분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로버트슨의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그러자 로버트슨은 문제의 자동차를 구입해 직접 테스트했고, 결함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야 공격적으로 공매도에 나섰다.

로버트슨의 투자 스타일에는 그의 타고난 재능과 성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숫자 감각이 뛰어난 로버트슨은 방대한 정보를 소화하고 핵심을 걸러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기업 회계 보고서만 봐도 문제점을 간파할 수 있었고, 복잡한 주식 포트폴리오의 수익과 리스크를 머릿속에 꿰고 있었다. 게다가 남다른 결단력과 승부욕은 빠른 의사결정과 근성 있는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로버트슨의 주식 투자는 미국 시장에 머물지 않았다. 일찌감치 해외 주식에서 기회를 찾아냈다. 해외 주식에 분산 투자한 덕에 1987년의 블랙먼데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러면서 1989년 통일에 이은 독일 주식 강세와 1990년 일본 주식 폭락의 기회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었다.

타이거 매니지먼트

창시자 줄리안 로버트슨
창립 1980년
직원수 97명
운용규모 2019년 하반기 기준 360억 달러

로버트슨의 해외 투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아시아로 향했다. 특히 한국 주식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졌던 로버트슨은 외국인 투자자로는 선도적으로 한국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로버트슨을 한국으로 이끈 인물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아케고스 캐피털의 빌 황이었다. 현대증권에서 한국 주식을 중개하던 빌 황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로버트슨의 주식 브로커로 일하게 됐고, 그 후 능력을 인정받아 타이거로 영입됐다. 한국 현지 네트워크와 글로벌 투자 감각까지 겸비한 빌 황의 투자 아이디어는 로버트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타이거에서 빌 황이 주도한 한국 투자의 결정체가 바로 SK텔레콤 투자였다. 당시 타이거의 단일 투자로는 최대 규모인 5억 달러를 SK텔레콤 한 곳에 쏟아 부었으니, 빌 황에 대한 로버트슨의 신뢰가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할 수 있다.

한편 주식 투자에 집중하던 타이거의 사업 모델이 큰 변화를 맞은 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였다. 바야흐로 매크로 투자의 전성기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자 매크로 헤지펀드의 수익과 영향력이 급증했고, 특히 경쟁자 소로스의 위상은 국가 권력에 버금갈 정도가 됐다. 매크로 투자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였다. 게다가 소로스의 부상은 로버트슨의 경쟁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로버트슨은 즉각 투자 인프라의 확충에 나섰다. 그런데 매크로 투자는 타이거에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우선 투자 자산의 다각화 측면에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외환·채권·원자재 투자를 아우르게 되자 주식 시장의 방향성과 무관하게 안정된 수익을 올리는 진정한 헤지펀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렇게 효자 노릇 하던 매크로 투자가 골칫덩이로 전락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매크로와 주식의 투자 실패가 동시에 발생하면서였다. 사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식 투자에 있었다. 로버트슨이 평생의 신념인 가치투자 원칙을 고수하며 기술주 강세에 공매도로 대응한 것이 사달을 낸 것이다. 여기에 매크로 투자 실패는 결정타를 날렸다. 일본 경제에 비관적이던 로버트슨은 1998년 일본 엔화를 대량으로 매도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헤지펀드 LTCM의 파산이 맞물리자 엇박자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엔화 거래로만 20억 달러를 잃은 로버트슨은 매크로 투자를 접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돌아선 투자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순 없었다. 2000년 3월 로버트슨은 외부 자금의 운용 중단을 결정했다.

기업 회계 보고서 보고도 문제점 간파

비록 헤지펀드 운용에서는 손을 뗐지만, 로버트슨에겐 더 큰 역할이 남아있었다. 자신과 함께 펀드를 운용하던 부하 직원들의 홀로서기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로버트슨은 평소 눈여겨 보아온 젊은 펀드매니저들에게 초기 투자금을 제공하며 헤지펀드 설립을 독려했다. 빌 황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독립한 로버트슨의 수제자를 일컫는 ‘타이거 컵스(Tiger Cubs)’는 다른 신생 헤지펀드에 비해 특별한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 로버트슨의 후광효과가 컸다. 로버트슨의 휘하에서 훈련을 받고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했다는 인식 덕분에 타이거 컵스는 신뢰할 수 있는 투자 브랜드가 되었다. 게다가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친 타이거 동문 네트워크는 타이거 컵스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타이거 컵스의 운용 자산 규모는 약 2130억 달러에 달한다. 헤지펀드 산업 전체 규모의 6% 수준이다. 이들은 로버트슨의 DNA를 공유하고 있어 보유 종목과 투자 전략이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로버트슨은 업계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이기도 하다. 시장이 만약 그들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인다면, 게다가 매수든 매도든 강제로 청산 당한다면, 아케고스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폭풍이 몰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승부욕 중시, 신입사원 면접 때 스포츠 취미 평가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돈을 많이 번 헤지펀드 매니저 10명의 명단이 발표됐다. 그런데 그들 중 무려 4명이 타이거 컵스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었다. 로버트슨의 스타 수제자로 꼽히는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체이스 콜먼이 그 선두에 섰다. 로버트슨은 자신의 최대 성공 비결로 젊고 유능한 인재 발굴을 꼽아왔다. MBA 학위를 막 취득했거나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신입 교육을 막 마친 젊은 인재를 채용해 훈련 시켜 타이거 컵스로 키워냈다.

많은 헤지펀드가 당장 펀드 운용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로버트슨은 자기 나름의 특별한 인재상을 갖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강한 승부욕이었다. 자신도 그랬고, 경쟁에서 이기려는 욕구가 펀드매니저의 필수 덕목이라는 믿음에서였다.

로버트슨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취미 생활에 주목했다. 출발점은 스포츠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얼마나 강도 있는 스포츠를 즐기는지 살펴 평가에 활용했다. 실제로 많은 수의 타이거 컵스는 철인 3종 경기와 같이 격렬하고 인내가 필요한 스포츠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버트슨은 채용 과정에 심리테스트도 진행했다. 3시간에 걸친 테스트를 통해 헤지펀드에 얼마나 적합한 인물인지 사전에 판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jhchoy@hycu.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및 유비에스·크레디트스위스·씨티그룹 FICC(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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