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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포디즘’ 사라진 시대의 대학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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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헨리 포드를 ‘자동차 왕’이라 칭하는 것은 20세기 초 획기적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개발해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근로자 앞에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하여 최종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들을 조립하게 한 포드의 아이디어, 일명 포디즘(Fordism)은 이후 많은 공장에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표준화를 통한 소품종 대량생산의 포드주의는 1980년대 이후 두드러지기 시작한 소비자의 다양성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조립라인을 설치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한번 설치된 생산라인은 변경이 어려웠다. 자동차는 이제 바퀴 달린 컴퓨터가 되고 있고 포디즘이 대변하던 지난 한 세기의 산업 생산방식과 경제·사회 체제는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자동차 조립 라인 사라지듯 #획일화된 학사 구조 바뀌어야 #기술·콘텐트 융합학제 바람직

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더디다. 학문과 진리 탐구의 장으로서 대학이 전통적 구조와 운영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93개 4년제 일반대학이 있고 대학들이 운영하는 학과의 종류도 대부분 비슷하다.

대학의 역사가 우리보다 오래된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들은 일반교양, 연구, 전문직업 등 주된 목적이 애초에 구분되어 있고 학생들은 거기에 맞춰 대학을 선택한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실제 이러한 구분이 없을 뿐 아니라 연구중심 대학으로 분류되는 많은 대학도 대학원생보다 학부생 교육 위주이고 취업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디지털화가 가속되고 직업의 특성과 인재의 조건이 달라지는 상황이지만 대학은 구조적 한계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산업이 생긴다고 거기에 맞춰 학과를 신설하고 교수를 새로 채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획일화된 운영방식으로는 대학의 경쟁력이 급격히 더 저하될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포디즘 방식의 경직된 학사운영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휴먼임팩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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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연구의 대가인 클레이턴 크리스텐센 교수가 제시한 ‘지속적 혁신’과 ‘파괴적 혁신’ 개념을 대학의 변화 방향에 적용해볼 수 있다. 2012년 스타트업 방식으로 투자를 받아 설립된 미네르바 스쿨은 대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파괴적 혁신 모델에 속한다. 대학 캠퍼스 없이 100%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지만 경쟁률은 하버드대보다 높다. 온라인 수업은 실시간 토론식 세미나 방식이며 이를 통해 비판적·창의적 사고를 기른다. 4년 동안 세계 7개 국가 대도시를 돌며 기업 인턴십과 공공기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현장 경험과 글로벌 역량도 키운다. 창립자인 벤처투자가 벤 넬슨은 대학이 미래 인재 양성은 소홀히 하면서 건물신축, 연구비 수주, 스포츠팀 투자에만 몰두하기에 교육 혁명을 시도하였다고 했다.

기존의 틀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운 대부분 대학은 개선을 통한 지속적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 변화의 핵심은 산업 생태계와 기술 트렌드를 대학의 커리큘럼에 반영하는 것이다. 제조업의 소프트화는 제조와 서비스의 경계를 허물었다. 서비스업인 유통과 금융은 테크기업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게임을 비롯한 웹·모바일기반 산업은 기술 못지않게 인문적 콘텐트가 성패를 가른다. 디지털 전환시대라고 단순히 공학계열 학과와 정원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기술과 콘텐트 영역을 커버하는 통합된 학제간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현행 전공별 대학교육 방식에서는 학생들이 졸업 이수학점 채우느라 움직일 틈이 없다. 인문·사회·이공·예능 계열별 주요 과목들을 모듈화하여 학생들이 추구하는 커리어에 맞춰 4년 동안 모듈을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전공에 대한 전문적 심화교육은 대학원 교육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변화무쌍한 기술의 진보를 업데이트할 수 있도록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구체적인 기술(일례로 3D프린팅 디자인)을 교육, 재교육시키는 소위 ‘마이크로 대학’도 운영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교육부가 규제를 풀어야 가능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60% 정도는 어른이 되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일과 직업의 세계가 변하면 고등교육을 담당하는 대학도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대전환의 환경에서 대학의 변화는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준다.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현재를 준비하느냐에 따라 대학들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