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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의 글씨체, 국정원 얼굴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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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창설 60주년을 맞아 새 원훈(院訓)을 소개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이라는 문장인데, 이 글씨에 활용된 서체가 정치권 일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국정원은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원훈석 제막식을 열고 새 원훈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문장은 국정원의 다섯 번째 원훈으로, 애국심·헌신·충성 등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2017년 1월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성당에서 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뉴스1

2017년 1월 15일 오후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성당에서 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원훈석에 쓰인 글씨체가 고(故)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손글씨를 본뜬 '신영복체'(정식 명칭 '어깨동무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약 20년 동안 복역한 인물이다. 전향서를 쓰고 1988년 가석방된 이후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저서를 통해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평가받았다. 신 교수는 2016년 타계했다.

국가정보원 새 원훈 [청와대 제공]

국가정보원 새 원훈 [청와대 제공]

정치권 일각에선 신 교수의 글씨체가 대북 정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원훈석에 사용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교수의 글씨체는 소주 '처음처럼'이나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 등에 널리 쓰이고 있다.

국정원은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1961년 창설된 이후 37년 동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원훈으로 사용했다. 이 원훈은 초대 중앙정보부장인 김종필 전 총리가 지은 것으로, 37년 동안 쓰였다.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인 1998년에는 '정보는 국력이다'로 원훈이 변경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에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을 원훈으로 썼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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