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람까지 치고 도망간 부회장, 기소 때 뺑소니 빠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4 05:00

업데이트 2021.06.04 09:48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끼어들기 보복운전' 관련 특수상해 등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끼어들기 보복운전' 관련 특수상해 등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보복운전으로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구본성(64)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이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특가법상 도주치상 혐의를 적용받았지만 검찰 기소 단계에서 뺑소니 혐의 적용을 피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은 교통사고 과실범만 처벌하고 '보복운전'처럼 차량을 이용한 고의범을 처벌할 수 없는 법적 미비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구 부회장은 형법상 특수재물손괴 및 특수상해죄로 기소됐다.

두 차례 치고, 두 차례 달아났다

보복운전 자료사진. [연합뉴스]

보복운전 자료사진. [연합뉴스]

구 부회장은 지난해 9월 5일 낮 12시 35분쯤 서울 강남구 한 도로에서 자신의 차(BMW X5)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40대 남성 A씨가 몰던 차량(벤츠)이 구 부회장의 차 앞에 끼어들었다. 무리한 끼어들기에 화가 난 구 부회장은 A씨의 차를 앞지른 뒤 급정거해 자신의 차 뒤범퍼로 A씨 차량의 앞범퍼를 파손한 뒤 도주했다.

A씨는 구 부회장에게 차를 세울 것을 요구하며 구 부회장을 뒤쫓았다. 하지만 구 부회장은 이를 무시하고 상당 거리를 그대로 주행했고, 결국 A씨에게 따라잡혔다. 차에서 내린 A씨는 인근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구 부회장의 차를 막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도망가지 마라, 기다려라”고 외쳤다. 그런데도 구 부회장은 차를 가로막은 A씨를 자신의 차로 밀어붙이고 A씨의 배와 허리부분 등을 쳤다. 이 2차 사고 뒤에도 구 부회장은 사고 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

경찰과 검찰, 서로 다른 결론

구 부회장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구 부회장이 낸 1차 사고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죄를 적용하고, 2차 사고에는 특수상해죄를 적용해 지난해 10월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반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은 경찰과 다른 결론으로 구 부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1차 사고에 대해서는 특수재물손괴죄를, 2차 사고에 대해서는 특수상해죄를 적용했다.

경찰과 검찰이 1차 사고를 두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은 피해자의 상해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주치상 vs. 특수재물손괴 

경찰 관계자는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를 적용한 것에 대해 “수사 결과 1차 사고만으로도 피해자의 상해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 관계자는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도주해야 특가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 피해자 진술과 다른 정황을 고려할 때 상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구 부회장 측과 합의한 A씨는 전치 2주의 진단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구 부회장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법무부 차관 출신 전관 변호인 등을 선임해 수사를 받았다.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는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특수재물손괴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법정형이다. 유기징역의 법정형을 놓고 보면 도주치상죄(1년~30년)가 특수재물손괴죄(1월~5년)보다 높다.

‘보복운전’에 책임 물을 수 없는 ‘뺑소니’

구 부회장이 사람을 들이받고 ‘도주’한 2차 사고 부분은 도주에 대한 가중처벌죄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통상의‘뺑소니’의 경우 고의로 사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실수로 교통사고(과실범)를 낸 뒤 도주하는 경우에 처벌할 수 있도록 현행법이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현재의 법으로는 보복운전 후 도주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고, 이는 법률의 공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른 변호인은 “처음부터 고의성을 갖고 사고를 내고 도주까지 했는데 특가법상 도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며 “실수로 사고를 내고 도망간 것보다 강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런 경우 양형에서 도주한 점이 반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재물손괴와 특수상해죄로 재판을 받은 구 부회장은 법원이 재량으로 형을 감경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3일 “구 부회장이 범행을 자백했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해 실형보다 집행유예를 선고해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인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구 부회장에게 적용된 특수상해죄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법정형이다.

이수정·여성국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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