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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트, 평소 ‘하마스 폭격’ 주장 강경파…이·팔 관계 먹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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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스라엘 원내 제2당인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왼쪽 첫째) 대표와 극우 성향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왼쪽 둘째), 아랍계 정당 라암의 만수르 아바스 대표가 2일 텔아비브 동부 라마트간에서 만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몰아내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 협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 원내 제2당인 예시 아티드의 야이르 라피드(왼쪽 첫째) 대표와 극우 성향 야미나의 나프탈리 베네트(왼쪽 둘째), 아랍계 정당 라암의 만수르 아바스 대표가 2일 텔아비브 동부 라마트간에서 만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몰아내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 협의안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새로운 킹메이커.”

네타냐후 비서실장으로 정계 입문 #국방장관 안 시켜주자 사이 금가 #연정 막판 합류, 몸값 올리는 수완 #의석 단 7석으로 총리직 거머쥐어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가 지난 2일(현지시간) 새 총리로 확실시되는 나프탈리 베네트를 두고 고른 표현이다. 베네트는 단순 ‘킹메이커’에 머물지 않고 총리직을 맡으면서 ‘킹’으로 우뚝 섰다. 2006년 정계에 입문한 뒤 약 15년 만에 권력의 정점에 선 것이다. 올해 49세인 베네트의 등장으로 총 15년2개월의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71)의 장기집권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이번 연정에는 지난 3월 총선에서 원내 제2당이 된 중도 성향의 예시 아티드(17석), 중도 성향의 청백당(8석), 중도 우파 성향의 ‘이스라엘 베이테이누’(7석), 좌파 성향의 노동당(7석)이 참여했다. 또 우파 성향의 ‘뉴 호프’(6석), 아랍계 정당 연합 ‘조인트 리스트’(6석),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메레츠(6석), 극우 성향의 야미나(7석), 아랍계 정당 라암(4석)도 합류했다. 이들 9개 정당이 보유한 의석은 모두 68석으로, 전체 크네세트(의회) 의석(120석)의 절반을 넘는다.

한때 미국서 SW회사 운영 억만장자

베네트는 연정에 합의한 군소 정당의 수장 중 첫 순서로 총리직을 맡는다. 그가 이끄는 민족주의 극우 보수 성향의 야미나가 확보한 의석이 7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정치력이다. 이스라엘의 반(反)네타냐후 성격의 군소 정당이 손을 맞잡을 때 베네트는 친(親)네타냐후도, 그렇다고 반대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해 왔다. 대신 마지막까지 몸값을 높이며 기다렸다. 반네타냐후 연합만으론 연정 구성이 되지 않자 베네트는 그때야 연정 구성의 마지막 열쇠를 제공했다. 연정의 퍼즐을 그 덕에 완성할 수 있었던 반네타냐후 연합은 그에게 첫 총리직을 내놓았다. 2일 극적으로 합의한 내용이다. 연립내각을 구성한 정당들의 합의에 따라 베네트의 임기는 2023년까지다.

이스라엘 ‘반네타냐후 블록’ 9개 정당 연립정부 구성 합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스라엘 ‘반네타냐후 블록’ 9개 정당 연립정부 구성 합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네타냐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연정 출범을 저지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퇴임하는 네타냐후를 기다리는 것은 형사처벌 가능성이다. 그는 수뢰 및 배임, 사기 등 다양한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베네트의 앞날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연립내각은 “가장 다채로운 정치색”(이코노미스트)을 지녔다고 할 정도로 중도와 우파, 좌파, 극우, 아랍 세력 등 9개 정당이 참여한 무지개 연정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아랍계 군소 정당 라암이 연정에 들어갔다. 이 부분이 베네트가 이끌게 될 연립내각의 취약점이다. 베네트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로, 팔레스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강경파다. 그런 그가 아랍계 정당인 라암, 나아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미국과 중동의 이해관계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키울 가능성이 상존한다.

NYT에 따르면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하자 베네트는 ‘드디어 팔레스타인 국가의 시대는 끝났다’며 두 손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의 유대계 맏사위 제러드 쿠시너와 함께 반팔레스타인 노선을 확실히 했던 것을 환영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시대는 과거다.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의 마찰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차기 총리 예약 베네트

차기 총리 예약 베네트

베네트는 정계 진출 이전 경제적 성공을 일궜다. 이스라엘에서 나고 자란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소프트웨어 회사인 사이오타(Cyota)를 설립해 키워낸 뒤 매각해 젊은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사이버 사기 및 각종 범죄에서 사용자를 보호해 주는 시스템이다. 이후 그는 이스라엘로 금의환향했고, 정계에 진출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아버지 덕에 보유한 미국 국적도 크네세트 입성을 위해 포기했다.

아랍계 포함 무지개 연정, 앞날 불투명

둘의 관계는 공교롭다. 베네트의 정치적 아버지가 네타냐후였기 때문이다. 베네트의 정계 입문 후 첫 타이틀도 네타냐후의 비서실장이었다. 이후 그는 2013년부터 경제·교육·디아스포라(재외동포) 담당 장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그가 원한 건 국방장관이었다. 이를 2018년 네타냐후가 거절하면서 둘의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네타냐후는 당시 자신이 국방장관까지 맡는데, 이를 본 베네트가 등에 칼을 꽂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결국 네타냐후는 2019년부터 2년간 베네트를 국방장관으로 기용했다.

베네트가 국방장관직을 원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는 기업인으로 성공하기 이전 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에서 무력행사를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는 국제사회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번 펼쳤었다.

베네트는 90년 군에 입대해 최정예 특수부대 사이렛매트칼 지휘관으로 승진해 다수 작전에 참여했다. 2006년엔 예비군으로 레바논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의 가족은 67년 3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으로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한 정통 유대계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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