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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30조 세금 더? 수퍼추경, 민간 위축 ‘구축효과’ 우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이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속도전에 들어갔다. 오는 8월 전 국민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주요 피해계층에 대한 선별 지원, 소상공인 손실보상까지 추가하는 방향이다. 올해 20조원 안팎, 많게는 30조원으로 전망되는 초과 국세 수입(세수)을 활용한 ‘수퍼 추경’이 예고됐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두번째)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두번째)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민주당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2차 추경을 편성하면서 세입 증액 경정이 이뤄질 예정이다. 예상보다 세금이 더 많이 걷힐 것으로 보여 연간 세수를 늘려잡는 작업이다. 전례는 있다. 2016년과 2017년 기재부는 추경을 편성하면서 각각 9조8000억원, 8조8000억원 세수 증액을 했다. 늘어난 세수는 고스란히 추경 재원으로 쓰였다.

올해도 비슷한 수순이 예상된다. 세수가 정부 전망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기재부 ‘재정 동향’에 따르면 올 1~3월(1분기)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국세)은 88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9조원 늘어 역대 최대를 찍었다. 1분기 세수가 80조원을 넘어선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산업 실적 호조, 부동산 관련 세금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쳤다.

연간 초과 세수(1차 추경 대비)가 20조원 안팎, 많게는 30조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여당 안팎에서 나온다. 이날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2차 추경과 관련해 “상반기 세수가 더 걷혀 생긴 재정 여력을 국민에게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회계 장부상 세수 초과일 뿐이다. 기재부가 본예산과 1차 추경을 편성하며 예상한 올해 세수는 282조7000억원이었다. 지난해 285조5000억원(결산 기준)보다 3조원 가까이 쪼그라든 규모다. 기재부가 처음 올해분 예산을 짤 때 세수 전망치를 지나치게 낮게 잡은 탓에 초과 세수가 많아 보일 뿐 재정에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국세 수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세 수입.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게다가 초과 세수를 바탕으로 2차 추경을 한들 어차피 재원은 민간에서 더 빨아들인 20조~30조원 세금이다. 정부에서 그만큼 민간 자금을 더 거둬들이면 시장에서 이뤄질 투자ㆍ고용 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도한 정부 지출이 민간 부문을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재정 투입을 통한 경제 성장은 이자율 상승으로 민간 소비와 투자 활동을 위축시켜 결국 효과가 반감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초과 세수란 것도 결국은 기업과 가계가 열심히 번 돈, 부동산 값이 오르고 거래가 늘면서 크게 증가한 세금”이라며 “국가재정법상 초과 세수는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적으로 쓰이게 돼 있는데 여당은 이 원칙을 어기고 있다”고 짚었다.

경제 부양 효과도 별로 없는 선거용 현금 뿌리기에 재정이 낭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추경이 경기 회복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는데, 1원을 써도 실제 경제 규모를 키운 효과는 0.2~0.3원에 그쳤다.

여기에 나랏빚은 이미 비상이다. 초과 세수를 고려하더라도 지출 규모가 워낙 커 올해치 적자만 100조원(통합재정수지 기준)에 근접할 수 있다.

지난해 본예산을 편성할 때만 해도 805조2000억원으로 전망됐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4차례, 올해 1차례 추경을 거치며 965조9000억원(연말 예상 기준)으로 빠르게 불었다. 나랏빚 1000조원 돌파가 눈 앞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역대 최대인 30조원 규모의 수퍼 추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53.2%에서 2026년 69.7%로 뛰어올라 “고령화로 인한 부채 폭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가 무색하다. 기재부가 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 국가채무 비율은 60%로 묶어놓겠다며 만든 재정준칙도 무용지물이다.

국가채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국가채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시점도 문제다. 초저금리, 지난해 대거 풀어놓은 재정, 백신 공급, 예상보다 빠른 경기 회복 속도 등이 맞물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고물가)이란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2.6%를 기록하며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연 2%)를 훌쩍 뛰어넘었다. 물가 급등은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금융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 기업이나 가계 등의 도산 위험을 키운다는 점도 우려스렵다.

지난 2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저효과와 일시적 공급 충격”을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단기 현상으로 치부했지만, 전문가 진단은 다르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2차 추경으로 재정을 또 푼다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국내 물가를 자극해 자칫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기여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수출 주도로 민간 경기 회복세가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에서 추경까지 편성하며 위로금을 지급을 서두르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목적을 제외하고선 설명을 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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