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을 거다. 적어도 의원들은 그런 기류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조국 사태’ 사과에 대해 여당의 한 친문 핵심 의원이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말이다. “불만이 있는 의원도 꽤 있지만, 어차피 사과한 이상 이 문제를 더 끌고 가도 좋을 게 없다는 분위기”라는 설명이었다.
또 다른 전략통 의원은 송 대표 사과에 대해 “선당후사의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당내 대선 후보들이 ‘조국의 늪’에 빠져들기 전에, 대표 본인이 비난을 감수하며 문제를 매듭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국의 시간』 출간으로 당 안팎에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에 직면했던 여권 대선 후보들은 송 대표의 사과 이후 한층 여유가 생긴 모습이다. 한동안 ‘조국 사태’에 침묵했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전날(2일) JTBC 인터뷰에서 “‘조국 사태’는 이미 정쟁의 수단이 됐는데 제가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특히 당 대표께서 입장을 내셨으니 저는 당원으로서 지도부의 입장을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역시 전날 페이스북에 “당 지도부의 고민과 충정을 이해한다”며 “이제는 미래를 더 말해야겠다. 국민의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적었다.
대선 후보들 대신 강성 당원들의 문자 폭탄을 맞은 건 송 대표였다. 이날 민주당 당원 게시판과 온라인 커뮤니티엔 송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거나 송 대표에게 ‘문자 폭탄’을 보내겠다고 하는 게시물이 다수 올라왔다. SNS엔 ‘#송영길_사퇴해’라는 해시태그까지 등장했다. 한 달 전 민주당 초선의원 5명이 재·보선 참패 원인으로 ‘조국 사태’를 거론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반발 예상했던 송영길…욕먹어도 남는 장사?
물론 송 대표가 강성 당원들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기자회견 전날(1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당장 투톱 중 한 명인 윤호중 원내대표부터 “조국에 대한 사과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질문이 있으면 그때 답하는 게 어떻겠냐”는 절충안도 나왔다.
비공개회의에 참석한 한 최고위원은 “송 대표가 의견을 모두 경청했지만, 형식적으론 아무런 것도 합의되지 않았다”며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을 언급한 건 결국 송 대표의 결단이었다”고 설명했다.
당 일각에선 “이번 사과가 장기적으로 송 대표에게 남는 장사가 될 것”(수도권 의원)이란 관측도 나온다. 차기 대선 후보의 숙제를 대신 해결한 만큼, 향후 대선 정국에서도 송 대표에게 힘이 실릴 거란 이유에서다.
송 대표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그간 당내에서 6월 초로 예측됐던 대선기획단 발족 시점을 ‘6월 중순’으로 못 박았다. 6·11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대선기획단을 출범시키려는 취지라고 한다. 당 일각에선 “결국 ‘송영길의 시간’을 꽉 채워 자신을 빛내겠다는 뜻 아니냐”(중진 의원)는 관측도 나온다.
P4G 서울 정상회의 이후 당 탄소중립화위원장을 송 대표 자신이 직접 맡기로 하는 등 최근 정책 분야의 주도권도 강해지는 모습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송영길 호(號)는 전당대회에서 35.6%만 득표해 어느 때보다 협소한 지지기반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단순한 ‘대선 관리형’ 대표로 남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만 송 대표의 계획대로 당이 운영될지는 미지수다. 당장 당내에서조차 “반쪽짜리 사과”(서울 초선)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태에서, 당 지지율이 오를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중도층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조국 사태’ 사과를 계기로 강성 지지층마저 이탈하면, 사과를 결단한 송 대표가 리더십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돌풍’으로 인해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점도 변수다. 정당 지지율은 일종의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할 위험도 적지 않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결국 최종 평가는 지지율 추이와 대선 결과로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