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총각과 만남 어떤가" 베트남 유학생 분노케한 문경시

중앙일보

입력 2021.06.03 05:00

"한국 사회는 성 평등 의식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물건처럼, 결혼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공부하러 한국에 왔지 남자를 만나러 온 게 아니다."

지난 1일 베트남 출신 유학생 꾸엔(가명)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꾸엔은 다른 베트남 출신 유학생들, 인권단체와 함께 지난달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농촌 남성과 베트남 유학생의 만남 주선 사업을 한다는 공문을 만든 경북 문경시가 이주여성의 평등권과 인격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유학생과 인권단체가 인권위 앞에서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주여성인권센터]

지난달 28일 베트남 유학생과 인권단체가 인권위 앞에서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주여성인권센터]

20대 초반 여성인 꾸엔은 지난해 국내 지역 국립대 국제학부에 합격해 한국에 유학을 왔다. 한국에 온 지 2년째라 아직 한국말은 서툴지만, 강사로 활동할 정도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베트남 여성 유학생인 그는 인권위에 왜 진정을 넣게 됐고 한국에서의 삶은 어떤지 1일 익명으로 전화와 서면 인터뷰를 나눴다.

전통, 문화 관심…영어 강사 일도 

그는 하노이도 호찌민도 아닌 베트남 중부 작은 도시 출신이다. 외동딸인 꾸엔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고 의사 표현도 확실히 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 음악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부모님 도움 없이 나 혼자 유학준비를 해서 지금의 학교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하나뿐인 딸이 떠나는 걸 안타까워했지만, 더 좋은 나라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는 걸 자랑스러워하셨고 응원해주셨다."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좋은 것도 유학 결심에 큰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 한국이 문화유산과 전통을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오고 있고, 문화 강국이 됐는지 배워보고 싶어다고 한다. 한국에 온 뒤에도 부모님 도움 없이 지내기 위해 영어 강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태고 있다.

"결혼하려고 한국 왔냐" 질문 슬퍼

코로나19 예방 홍보판이 있는 베트남 거리 [EPA=연합뉴스]

코로나19 예방 홍보판이 있는 베트남 거리 [EPA=연합뉴스]

꾸엔은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함께 온 친구들은 주변 친구이나 중년의 어른들로부터 "남자 만나 결혼하려고 한국에 왔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학교 교수로부터 베트남 이주 여성들과 문경시의 공문에 대해 듣게 된 꾸엔은 교수의 소개로 이번 인권위 진정에 참여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단지 결혼을 위해 온 존재로 보는 것 같아 슬프고 기분 상한다. 우리는 한국에 공부를 하러, 각자의 꿈을 이루러 왔다. 결혼은, 또 한국 남자와의 결혼은 각자의 선택 문제다."

그는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농촌 남성들과 많이 결혼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결혼 중개 업체를 통해 결혼하는 현실도 알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 사람들도 이런 정책 화낸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2019년 7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A(36)씨가 2019년 7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개 업체를 통해 이주 여성들이 모르는 이들과 결혼하는 걸 알고 있다. 일부 남성들이 이주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해 가정 폭력이 일어나기도 한다. 내가 모든 베트남인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베트남 사람들도 이런 정책에 화를 낸다. 베트남 신부들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학생들이 모두 결혼하러 온 것은 더욱 아니다."

꾸엔은 한국 사회가 성 평등 인식이 높지만, 베트남 여성들은 물건으로 여기고 단순히 결혼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느낀다고 했다. 또 자신도 한국에서 여성으로 일하며 상사가 남자를 우대하는 것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이주 여성은 한국에서 '하층민' 취급" 

지난달 28일 베트남 유학생과 인권단체가 인권위 앞에서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주여성인권센터]

지난달 28일 베트남 유학생과 인권단체가 인권위 앞에서 진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주여성인권센터]

"이번 진정을 지지하고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주는 분들께 감사하다. 정부가 사과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해줬으며 좋겠다. 우리는 한국에서 여전히 '하층민'으로 여겨진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뿐 아니라 다른 이주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줬으면 한다. 외국인들은 여전히 많은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한다."

꾸엔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지만, 한국의 차갑고 습한 날씨가 힘들다고 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유럽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후 베트남으로 돌아가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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