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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육군 '첨단전사' 만든다더니...소총 조준경 3%만 '양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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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육군은 지난 2017년부터 장병들의 전투력과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워리어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육군이 자체 조사한 결과 개인화기 조준경 등 핵심 장비 4종의 불량률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20일 인천광역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워리어 플랫폼을 착용한 한빛부대 11진 장병들이 기동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육군은 지난 2017년부터 장병들의 전투력과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워리어 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육군이 자체 조사한 결과 개인화기 조준경 등 핵심 장비 4종의 불량률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지난 2019년 6월 20일 인천광역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워리어 플랫폼을 착용한 한빛부대 11진 장병들이 기동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육군이 장병들을 첨단 전사로 만들겠다며 추진 중인 ‘워리어 플랫폼(warrior platform)’ 사업의 핵심 장비들이 심각한 불량 문제에 직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총에 장착해 쓰는 해당 장비들은 총 4종(개인화기 조준경, 고성능 확대경, 레이저 표적지시기, 원거리 조준경)으로 ‘적을 빨리 발견해 먼 거리에서 먼저 쏘고 정확히 명중시킨다’는 워리어 플랫폼의 도입 취지에 필수적인 장비들이다.

‘워리어 플랫폼’ 핵심장비 불량 #렌즈에 흠집·이물질 조준 못해 #25m 레이저 광선 겨우 5m 쏴 #"규격 없어 저가 낙찰, 불량 키워"

2일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육군이 지난 1월 1군단 직할 2개 부대에서 사용 중인 이들 장비 1551점(지난해 납품)을 전수 점검한 결과 평균 불량률이 26%로 나타났다. 점검표에는 없지만, 장비를 사용 중인 장병들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 ‘확인 필요’ 해당품도 38%에 달했다. 정작 양호품은 36%에 그친 셈이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방산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불량률이 5%를 넘기면 사실상 제작에 실패한 것으로 본다”며 “이 정도 불량률이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워리어 플랫폼 장비 제원 및 특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워리어 플랫폼 장비 제원 및 특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특히 정확한 조준을 돕는 개인화기 조준경의 경우 657점 중 ‘불량’(40%)과 ‘확인필요’(57%)를 제외한 양호품은 3%에 불과했다. 군 소식통은 “조준경 렌즈에 흠집이 나거나 이물질이 끼어서 조준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등 다양한 불량 사례가 적발됐다”고 말했다.

또 가시광선 및 적외선(IR) 레이저로 표적을 가리키는 레이저 표적지시기의 경우 25m 밖 표적에 광선이 비춰야 하는 데도 불량품(12%)은 모두 조사 거리가 5m에 그친 것으로 밝혀졌다.

군 안팎에선 불량률을 키운 원인으로 장비 도입 방식이 거론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방위사업청은 국방규격 없이 해마다 육군이 제시한 제안요청서에 따라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낙찰 하한가조차 설정돼 있지 않으니 사실상 최저가 낙찰로 진행돼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이용해 야간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 야시경을 통해 녹색 광선(레이저)이 보인다. [국방부 기자단]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이용해 야간 조준 사격을 하는 모습. 야시경을 통해 녹색 광선(레이저)이 보인다. [국방부 기자단]

실제 낙찰 결과를 봐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다. 불량률이 가장 높은 개인화기 조준경은 지난해 입찰 공고문에 제시된 예산 금액 추정가(예가)의 64%에 최종 낙찰됐다. 방사청이 진행하는 일반물자 경쟁 입찰의 통상적인 낙찰 하한가가 예가의 85%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군수 전문가인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민수 시장이 없는 장비들의 특성 탓에 평소 준비가 안 된 업체는 계약을 맺어야 공장을 가동하게 마련”이라며 “단가가 낮은 데다가 미숙련공들이 짧은 기한 내 급히 제조하다 보니 불량률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규격 없이 계속 이런 식으로 도입하면 결국 장비 정비도 안 되고 이후 소모품 명목으로 더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런 데도 방사청과 육군은 올해 장비 구매 계약 역시 지난해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지난달 28일 입찰을 마감한 일부 장비의 경우, 기존에 불량 장비를 납품했던 업체들이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서욱 국방장관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에서 사이드 라쉬드 알 셰히 UAE 육군 소장(왼쪽)과 함께 전시된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2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서욱 국방장관이 현지에 파병된 아크부대에서 사이드 라쉬드 알 셰히 UAE 육군 소장(왼쪽)과 함께 전시된 '워리어 플랫폼' 장비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이와 관련, 방사청 관계자는 “워리어 플랫폼 사업과 관련해 육군으로부터 불량 발생에 대해 별도로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며 “향후 육군의 조치 요구가 있으면 계약 조건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해명했다.

지난 2017년부터 워리어 플랫폼 사업을 추진 중인 육군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하자품에 대해선 정식 절차에 따라 하자 보수를 청구하고 있다"며 "이와는 별도로 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량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철재ㆍ김상진ㆍ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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