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혜리의 시선

조국이라는 돈벌이

중앙일보

입력 2021.06.03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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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국의 시간』을 펴낸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유튜브 인터뷰 화면. 한길사는 이 책의 최대 수혜자다. [유튜브 캡처]

『조국의 시간』을 펴낸 김언호 한길사 대표의 유튜브 인터뷰 화면. 한길사는 이 책의 최대 수혜자다. [유튜브 캡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딱 조국스러운 책을 냈다.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내려가는 심정"이라며 책 서문에서부터 조국 특유의 중2병스러운 자기연민을 맘껏 뽐낸 회고록『조국의 시간』(한길사)이다. '조국교(敎) 광신도들'의 낙점을 갈구하는 이낙연·정세균 등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들에겐 조족지혈(曺族之血·조국 가족의 피) 같은 대단한 책인지 모르겠으나, 상식 있는 대다수 사람에겐 그저 종이가 아까운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 같은 하찮은 책일 뿐이다. 책 내용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양측 모두 인정하는 교집합도 있다. 바로 돈 냄새 좇아가는 탁월한 능력이다.
책 출간도 전에 예약판매 6만 부로 주요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이 여세를 몰아 공식 출간 하루만인 지난 2일 10만부를 돌파하고 이미 15만부 넘게 찍었다고 한다. 조 전 장관이 당장 손에 쥘 인세 수입만 해도 어림잡아 수억 원, 한껏 고무된 그의 지지자들이 SNS에 올린 희망대로 정말 "100만 부를 향해 따박따박" 간다면 20억원 가까운 거액을 벌 수도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자신의 페이스북 글과 친구들 격려사, 관변언론 기사를 복사해 붙이는" 수준의 노력 이외엔 일체의 비용을 들이지 않은 책 한 권으로 지난해 변호사비와 병원비로 줄어들었다던 예금 1억2800만원쯤은 가뿐히 충당하고도 남는 큰돈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그를 비판하는 쪽에서조차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그걸 이용해 돈까지 버는 걸 보니 머리 좋은 건 인정한다"는 찬사 아닌 찬사가 나오는 이유다.
돈 냄새 잘 맡는 건 사실 조 전 장관만이 아니다. "언론의 허위보도와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에 맞서 내놓는 역사적 기록"이라며 이미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쇄 기계 돌아가는 동영상까지 찍어 SNS에 올리며 책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한길사야말로 돈 측면에서는 조 전 장관보다 한 수 위다. 정상적인 출판계약이 이뤄졌다면 통상 출판사가 저자 인세보다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니 하는 말이다. 조 전 장관을 앞세우고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촛불 시민의 위대한 역량" 운운하며(유튜브 인터뷰) 추임새를 넣기만 하면 돈이 막 굴러들어오니, 출판사 측에서 왜 먼저 출간 제의를 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출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조 전 장관이나 한길사나 무슨 책을 내든, 또 무슨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 지지자들 주머니를 털든 눈살이 찌푸려질망정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민심을 거스르는 이른바 '조국 수호'라는 불씨를 살려내고 자기 진영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출판시장을 교란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조국백서'를 만든다며 제작비로 3억원을 모금(※이후 사용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했던 저자 중 한 사람인 고일석 더브리핑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19년 청년 인재로 영입했던 프로게이머 황희두(29)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 그리고 김어준의 딴지일보 게시판에서 파생한 딴지자봉단과 합작으로 『조국의 시간』책 나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이름은 분명 '나눔'인데 실제 내용은 정반대다. 고 대표 등은 SNS를 통해 조 전 장관 지지자들에게 각자 인터넷 서점에서 10권이든 100권이든 원하는 만큼 책을 주문한 후 이벤트 담당자들이 알려주는 경기도의 한 물류창고로 수령창고를 지정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명분은 이 책을 모아서 전국의 중고교 도서관 등 필요한 곳에 보낸다는 것인데, 출판계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전형적인 사재기 수법이라는 의심이 든다. 한 주요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조국의 시간』은 출간 전에 이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니 순위 올리기용 사재기로 보기는 어렵지만 초기에 많은 판매 부수로 세를 과시하고 그 화제성으로 판매를 더 확대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고 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회 산하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관계자 역시 "실제 주문한 독자 자택 등이 아니라 배송지를 특정한 한 장소로 지정해 많은 양의 구매를 독려하는 건 문제의 소지가 다분한 시장교란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국 지지자들의 이런 시장교란 행위로 조국의 시간을 얼마나 더 계속 유지시킬 지 모르겠다. 다만 이런 식으로 100만 권의 책을 판다 해도 그들이 원하는 조국의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걸 모르는 조국 수호대만 자기 돈 털어 부자 조국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 무슨 코메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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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 쌈짓돈으로 출판시장 교란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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