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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6시 10초에 퇴근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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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경제산업부디렉터

최지영 경제산업부디렉터

“역사상 처음으로 5세대가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시대를 맞았다.”(미국 연구기관 퓨리서치센터)

사회 관심, 온통 MZ세대에 쏠려 #정작 기업 허리인 ‘낀 세대’는 #소외감·업무 폭주에 울분 #갈등 풀 묘안 필요해진 시점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면서 많은 일이 직장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근무로 갈등이 더 증폭된 것일까. 주5일 근무제가 기름을 부었을까.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따라 상황이 더 심각해진 듯하다.

그간 나이와 위계질서에 인한 상명하복 문화가 유달리 강했던 국내 기업 특성상 외국 기업보다 세대 간 갈등이 폭발할 개연성은 더 크다.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이 ‘세대 간 전쟁’으로 비화하기 전에 해결책을 마련하는 게 기업들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정치·사회적 관심이 MZ세대에게로 쏠리면서 MZ세대에 치이는 ‘낀 세대’들의 좌절감은 더 커졌다.

〈“MZ세대 눈치 보면서 우린 막 대해”…서글픈 낀 세대(중앙일보 5월18일자 14면)〉 기사를 읽은 당사자들이 앞다퉈 들려주는 경험담에 이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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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 직원들이 말 그대로 오후 6시 10초에 퇴근합니다. C-레벨에서 갑자기 떨어진 일을 시키려고 주변을 둘러보면 직원들이 없어요.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그 일을 합니다. 일이 많은 어떤 날은 출근해보면 직원들이 2명만 출근한 날도 있어요. 저한테 보고 없이, 서로 간에 조정도 없이 연차를 내고 쉬거든요.” 최근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옮긴 한 임원의 토로다. 6시 10초에 퇴근하는 문제와 근태를 둘러싼 시각 차이는 사실 갈등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한 대기업그룹(재계 순위 20위권)이 회사 내 MZ세대 2500명과 바로 그 위, 소위 낀 세대 3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는 갈등의 양상이 매우 다면적, 입체적이란 점을 보여준다. 이 대기업은 세대 간, 직급 간 갈등이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보고 실상 파악에 나섰다.

낀 세대들은 업무 측면에서는 “조직 내에서 책임자, 조언자, 실무자 등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털어놨다(77.3%, 복수 응답). “경험이 많다고 시간이 급한 업무가 몽땅 자신에게 쏠린다(69.8%)”거나 “권한이 적은 데 비해 책임만 크다(62.7%)”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업무 말고 소통 측면에서 느끼는 애로는 훨씬 더 심하다. “사생활 침해 등으로 비칠까 후배 사원과 심층적으로 소통을 못한다(65.7%)”, “MZ세대가 코칭을 간섭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업무에 관여하면 일을 가로채는 것으로 인식한다(61.4%)”는 응답에선 두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 격차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엿볼 수 있다. “MZ세대는 칭찬을 선호하고, 본인의 잘못에 관대해 수정·보완 피드백을 해주기 힘들다(57.6%)”는 응답도 많았다.

구성원 5500여명을 심층 면접한 이 대기업은 그래서 낀 세대의 좌절감을 달래려 어떤 해결책을 도입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 하지 못했다. 당장 도입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전적 보상으론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대신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계속 고민해가기로 했다. 이런 상황이라도 인식한 이 대기업은 나은 축에 든다. 대부분의 기업은 표면화된 MZ세대의 반발이나, 사무직 노조 문제 같은, 이미 곪아 터진 문제에 대응하기에 바쁘다.

미국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최근 ‘업스킬링(upskilling·자신의 업무 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킴)’과 ‘리스킬링(reskilling·기술 변화에 따라 필요한 업무 능력을 새로 보강함)’에 대한 임직원의 커지는 욕구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인재 확보의 키워드로 꼽았다(임직원 500명 이상 미 기업 2000명 조사). 88%가 금전적 보상이 다소 적더라고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회사를 택하겠다고 답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일에 발전하지 못하고 소모된다는 생각에 괴로운 낀 세대들에게 기업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을까. 수정·보완 요구를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MZ세대들은 언제 업무를 익혀 낀 세대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까.

기업의 허리이자 주축인 낀 세대에게 성취감과 보람을 안기는 일, 이 일이 MZ세대를 달래는 일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기업들이 여러 시도와 고민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물론 이런 주장엔 스스로가 낀 세대인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실토한다.

최지영 경제산업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