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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집창촌 폐쇄가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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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최모란 사회2팀 기자

어린 시절 나에게 ‘수원역 집창촌’은 소설 『해리포터』속 볼드모트 같은 존재였다. 어른들은 언급을 꺼리며 “근처도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쭉 걸어가면 수원역으로 연결되는 지름길인데도 주변 성화에 항상 먼 길로 돌아가야 했다. 1997년부터는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으로 지정돼 아예 갈 수 없었다.

햇병아리 기자 시절 취재 목적으로 방문했을 땐 이유 없이 욕을 먹고 쫓겨났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는 나에게 선배는 “거긴 여자는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말하면 안 되는 자’  볼드모트처럼, 나에게 집창촌은 ‘가면 안 되는 곳’이 된 거다.

그러던 올해 초 수원시와 경찰이 수원역 집창촌 폐쇄를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에이 설마” 의심부터 했다. 여러 차례 걸친 폐쇄 시도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원시가 개발사업을 추진하면 성매매 업주와 종사자들은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었다. 경찰이 나서면 ‘인권침해’ ‘과잉단속’을 운운하며 거세게 항의했다.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고 했다. 성매매 업주들이 자진해서 폐업 의사를 밝혔다는 거다. 이들은 5월 말까지만 영업하겠다고 수원시와 경찰에 전달했다.

자진 폐업한 수원역 집창촌의 한 성매매 업소. 최모란 기자

자진 폐업한 수원역 집창촌의 한 성매매 업소. 최모란 기자

그리고 지난 5월 31일 오후 11시 20분. 영업 종료 예정일인 1일 0시를 채우지도 못하고 거리를 물들이던 붉은 불빛이 ‘진짜’ 꺼졌다. 집창촌이 수원역 일대에 자리 잡은 지 60년 만이다.

업주들이 유례없는 자진 폐쇄를 결정한 사연은 이랬다. 먼저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집창촌을 찾는 손님이 대폭 줄었다. 인근에 들어서는 대규모 아파트 등에선 “집창촌을 빨리 폐쇄하라”고 성화였고, 경찰의 단속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여기에 수원시가 집창촌 한복판에 소방도로 개설을 추진하자 일부 업주가 보상을 받고 떠났다. 수원시 관계자는 “한 자리에서 60여년간 성매매업소를 운영하면서 업주들의 결속력이 강했는데 몇몇 업소가 보상을 받고 떠나자 나머지 업체들도 운영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이번 기회에 평택역 삼리, 파주 용주골, 동두천 생연 7리 등 다른 집창촌까지 뿌리 뽑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집창촌이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수원역을 떠난 업주와 종사자들이 생계를 이유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오피스텔 등을 이용한 신·변종 성매매업소가 성행할 우려도 크다. 실제로 경기남부경찰청은 최근 오피스텔 여러 곳을 빌린 뒤 콜센터를 운영하는 등 기업형 성매매 영업을 한 일당을 적발했다.

공간을 폐쇄하기보단 성매매가 아예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성매매 종사자 등에 대한 생계·자활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최모란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