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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노위, "택배사 단체협상 거부는 부당노동행위" 판정 파장

중앙일보

입력

2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관계자 등이 원청 cj대한통운 단체교섭 거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관계자 등이 원청 cj대한통운 단체교섭 거부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결과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가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CJ대한통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택배 기사를 배달 물품을 맡기는 대기업의 근로자로 분류한 것으로 산업계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중노위(위원장 박수근)는 2일 전국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신청 사건에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은 사용자가 아니어서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정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오종택 기자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오종택 기자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청했지만, CJ대한통운은 "우리는 사용자가 아니다. 대리점이 사용자"라며 응하지 않았다. 대리기사들은 집배점을 정해 그곳에 적을 두고 일한다. 중노위의 이번 판정은 CJ대한통운을 집배점과 공동 또는 중첩적 사용자로 인정한 셈이다. 이는 올해 4월 서울고등법원이 '노동관계법상 공동사용자의 법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판결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법원의 판결 대신 중노위 판정을 그대로 인용하면 실제 택배기사가 속한 집배점을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집배점주는 고용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단체교섭은 근로조건, 징계, 퇴직금, 휴직 등 근로계약의 집단적 규율을 정하는 절차다. 사용자와 노조(근로자 대표 포함) 간에 진행된다. 단체교섭의 당사자로 사용자가 되려면 해당 조합원 또는 근로자와 개별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근로기준법 제2조는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이라고 돼 있다.

법에 명시돼 있듯이 근로자는 일한 대가로 자기가 속한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다.상여금이나 연월차 수당, 연장·휴일근로수당 등도 근로자에게 지급된다. 하지만 택배기사는 CJ 대한통운에서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다.

중노위의 판정이 법체계의 경계를 허물고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택배기사와 택배회사 간의 관계를 근로계약관계로 본 것이어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대법원도 일관되게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 여부를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는지로 판단하고 있고, 근로계약관계가 없으면 사용자성을 부정해왔다"며 "중노위의 이번 판정은 대법원의 판단 기준과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중노위의 판정이 산업현장에 적용되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계약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보험설계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방문판매원, 대여 제품 방문점검원, 건설기계종사자, 화물차주, 퀵서비스 기사 등은 대부분 대리점에 소속돼 있다. 한데 이들이 자신을 고용한 대리점이 아닌 대기업(원청)의 근로자로 분류될 수 있고, 원청과 교섭에 나설 수 있다. 계약 당사자 간의 자치, 즉 계약자치의 원칙이 무너지는 셈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시장의 계약질서가 무너지고 대신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법과 시장질서의 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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